[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27>卷四. 흙먼지 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10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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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쪽을 쪼개듯(12)

이에 조분은 1만 군사를 이끌고 함양성을 나가 미현(7縣)으로 가고, 내사 보는 성안에 남아 군민(軍民)을 단속하며 농성할 차비를 차렸다. 얼른 보아 조분과 보의 계책은 그럴싸했으나 시운(時運)과 민심이 그들을 돕지 않았다.

가만히 미현에 이른 조분은 한군(漢軍)이 올 만한 길목을 골라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기다렸다. 그러나 옹왕 장함을 미워하던 그 인근 농민이 한군의 선두인 번쾌에게 그 일을 알렸다. 3000 군사를 이끌고 앞장서 오던 번쾌가 군사들을 멈추고 말했다.

“중군(中軍) 선두인 조참 주발 두 분 장군에게 전하라. 행군을 두 배로 빠르게 하여 우리와 서로 깃발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를 유지케 하라 이르라. 우리가 매복을 만나면 바로 이어 밀고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참과 주발의 군사가 바짝 뒤따라오기를 기다려 다시 군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번쾌의 행군은 두어 식경(食頃)이나 늦어졌지만, 전과는 반대로 부근의 민심은 그 일을 전혀 조분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조분이 보기에는 한군의 선봉이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이 쳐둔 그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쳐라!”

한군이 어지간히 걸려들었다 싶자 조분이 기세 좋게 명을 내렸다. 골짜기며 숲 속에 숨어있던 1만 옹병(雍兵)이 벌떼처럼 일어나 번쾌가 이끈 3000군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매복에 걸린 한군의 태도였다.

“놀랄 것 없다. 겁내지 말라! 우리 대군이 뒤따라온다.”

그렇게 외치며 큰칼을 휘둘러 적을 맞받아치는 번쾌를 따라 군사들도 병장기를 들어 맞서는데 놀라거나 겁먹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조분도 어제오늘만 장수노릇을 한 게 아니라 이내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거꾸로 걸려든 듯한 느낌에 군사를 거두려는데 함성과 함께 조참과 주발이 이끈 한군이 몰려들었다.

“어서 물러나라. 이미 이른 대로 괴리(槐里)로 간다. 거기서 군사를 정비해 다시 한번 한군의 기세를 꺾고 유중(柳中)으로 가자.”

조분의 뜻은 그리하여 유중에 진채를 벌이고 함양성안과 기각지세(기角之勢)를 이루겠다는 것이었으나 뜻과 같지 못했다. 대쪽을 쪼개는 듯한 기세로 밀고 드는 한군은 괴리에서도 조분에게 반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번쾌와 주발이 한덩이가 되어 미현에서 이미 반쯤 골병든 조분의 군사들을 짓두들겼다.

조분이 견디지 못하고 유중으로 달아났으나, 그때는 이미 진세를 벌이고 자시고 할 만한 군사가 남아있지 않았다. 겨우 몇 천 명 남은 군사로 진채를 얽는 시늉만 내다가 저만치 한군이 오는 걸 보자마자 진채를 거두어 함양성안으로 달아났다.

1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기세 좋게 성을 나갔던 조분이 3000명도 안되는 패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함양성안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군량을 거둬들인다, 성가퀴에 통나무와 바윗돌을 쌓아놓는다, 부산을 떨었으나 속으로는 아래위 가릴 것 없이 두려워 떨었다. 한신은 서둘지 않았다. 장수들을 풀어 비로 쓸 듯 주변 고을들을 모두 거두어들인 뒤에야 5만 대군을 풀어 함양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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