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09>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20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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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韓信(8)

한신이 한군(漢軍) 대장군이 되고, 동쪽으로 돌아가 패왕과 천하를 다투어보자는 그 주장이 한왕 유방에게 받아들여지자, 남정(南鄭)의 한군 진영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특히 관동(關東)에서 따라온 많은 장졸들은 천하의 향방보다도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데 마음이 들떠 한중을 떠날 날만 기다렸다.

하지만 동쪽으로 관중 땅을 평정하고 다시 관동으로 나가 중원을 다툰다는 게 몇 마디 그럴듯한 말이나 저만의 각오와 다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패왕 항우와 범증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 끝에 한왕 유방을 가둬둔다는 생각으로 보낸 파촉(巴蜀) 한중이라 거기서 빠져나오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은 돌아갈 길이었다.

“지난번 한중으로 들어올 때 잔도(棧道)를 모두 불살라 버렸으니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오? 항왕의 의심을 덜거나 등 뒤를 두들겨 맞지 않고 남정까지 오는 데는 좋았지만 이제 다시 나가려니 우리 대군이 되돌아 나갈 길이 없구려.”

대장군의 배례(拜禮)가 끝나고 장수들만의 술자리가 되었을 때 한왕이 문득 그렇게 한신에게 물었다. 그러나 한신은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길이야 새로 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태울 잔도가 있었다면 다시 그 잔도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군사들을 식(蝕) 골짜기로 보내 대왕께서 불태워 버리게 하신 잔도를 다시 얽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그 숱한 잔도를 모두 다시 얽는단 말이오? 거기다가 그때쯤은 우리가 다시 돌아온다는 소문을 들은 삼진(三秦)의 대군이 그 곡도(谷道) 어귀를 굳게 틀어막고 있을 것인즉 그 일은 또 어쩌시겠소?”

“우리가 한꺼번에 대군을 보내 몰래 잔도를 다시 얽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신은 그렇게 말해놓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문득 엄중해진 얼굴로 덧붙였다.

“대군이 들고 나는 것은 모두 엄한 군기(軍機)이니, 술자리에서 길게 말할 것이 아닙니다.”

그제야 한왕도 심상찮은 느낌이 들어 더 따져 묻지 않았다.

한신은 다음날 한왕과 단둘만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야 대군이 한중에서 나갈 계책을 밝혔다. 아침 일찍 대전을 찾아온 한신은 소매에서 흰 비단 한 자투리를 꺼내 한왕에게 바쳤다. 한왕이 받아 펼쳐보니 산과 물의 형상을 그려놓고 여러 가지 표시를 한 도적(圖籍)이었다.

“대장군, 이게 무엇이오?”

한왕이 그래도 잘 알 수 없다는 눈길로 물었다. 한신이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대군이 돌아갈 길입니다. 대왕께서 걱정하신 잔도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 눈 여겨 보아 두었다가 비단에 옮겨 그려본 것입니다.”

“이 길이 어디 있으며, 이리로 가면 삼진 어느 땅으로 나아가게 되오?”

“고도현(古道縣)을 지나 대산관(大散關)을 나서면 진창(陳倉) 서쪽으로 빠집니다. 식(蝕) 골짜기를 지나 두현(杜縣) 남쪽으로 나가지 않고도 곧 바로 옹(雍) 땅의 염통을 내지를 수 있는 길입니다”

“대장군은 어떻게 이 길을 알게 되었소?”

한왕이 그렇게 묻자 한신이 새삼 감회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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