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아버지 노릇’…중국 근대화가의 서정 산문집

  • 입력 2004년 7월 2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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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간략한 필치에 세상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펑쯔카이의 만화.사진제공 궁리
단순 간략한 필치에 세상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펑쯔카이의 만화.사진제공 궁리
◇아버지 노릇/펑쯔카이 지음 홍승직 옮김/300쪽 1만원 궁리

“아빠, 병아리 사줘.”

떠돌이 장사치가 파는 병아리에 혹한 아이는 아빠를 졸라댄다.

아이의 성화에 견디다 못한 아빠는 마지못해 병아리 값을 물어본다. 영악한 장사치는 보통 병아리 값의 2배반이 넘는 액수를 부른다. 깎아달라는 아버지와 처음 부른 값이 아니면 안 팔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장사치의 실랑이 속에 아이의 칭얼거림은 더 높아만 가고…. 장사치와의 흥정에 실패한 아빠는 ‘다음에 다른 병아리장수가 오면 사줄게’라는 말로 아이를 달래본다.

하지만 ‘장사치 앞에서 갖고 싶다고 조르면 사주기가 힘들다’는 어른의 논리를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에 비애를 느낀다.

이 책은 중국 근대 화가이자 만화가인 펑쯔카이(1898∼1975)의 산문 23편을 소개하고 있다.

펑쯔카이는 1925년 ‘만화(漫畵)’라는 단어를 중국에서 처음 사용했고 간단한 붓놀림의 함축적인 ‘서정만화’를 그려낸 것으로 유명한 작가. 상하이대 푸단대 저장대에서 미술교수를 지냈으며 공산당 집권 이후 상하이미술협회 부주석을 지냈다.

하지만 그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중국 현대문학계의 일익을 담당할 정도로 번역가와 산문가로서 활약했다. 동시대 작가인 루쉰이 혼란한 시대에 냉정하고 꼿꼿한 글쓰기로 민중에게 호소했다면 그는 담백함과 서정적 비감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의 글은 언제나 삶 속의 작은 편린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일상과 주변 인물의 얘기 속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기쁨과 아픔, 원망(願望)과 후회를 풀어놓는다.

그는 ‘기차 속 세상’이란 글에서 수십 년 동안 기차를 타면서 변해온 자신의 느낌을 세 단계로 적고 있다. 처음 기차를 탔을 때 설렘과 호기심으로 마냥 재미있고 즐거웠던 시절, 기차가 너무 익숙해져 오히려 기차 타는 시간을 지겨워했던 시절, 그러나 기차 속 인간 군상을 보며 새로운 즐거움을 느꼈던 시절 등. 펑쯔카이는 우리가 접하는 세상사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다가온다고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글에는 자신의 네 자녀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아이들을 닮고 싶어했다. 어른들의 얄팍한 세상에 식상했던 그는 한 가지 대상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아이들의 ‘유희삼매(遊戱三昧)’의 경지를 부러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이 개인사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나무 조각을 놓고 맹목적으로 싸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당시 국가간 갈등과 전쟁을 비꼬기도 했다.

1931년 발간된 그의 첫 수필집 ‘위안위안탕(緣緣堂)’은 9년 뒤인 1940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다. 당시 중일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이 적국(敵國) 수필가의 글을 낼 정도로 그의 글이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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