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7년 인류 최초 ‘비행접시’ 목격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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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밖에도 생명(生命)은 있다. 그러나 외계인의 방문은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는 더욱 분명한 형태로 이뤄질 것이다.”(스티븐 호킹)

1947년 6월 24일 미국 워싱턴주 레이니산 상공. 자가용 비행기를 직접 운항하던 케네스 아널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왼편에서 9개의 금속성 비행물체가 시속 1000마일이 넘는 초고속으로 날고 있었으니.

“흔들리는 보트 같기도 하고 연(鳶) 꼬리 같은 것이 마치 접시를 물 위에 던진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비행접시(flying saucers)’란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1952년 미 공군은 비행접시가 다분히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해서 UFO(미확인 비행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s)로 격하(?)시켰다. 그럼에도 여전히 UFO는 ‘ET’가 조종하는 비행접시일 뿐이다.

그리고 채 열흘이 되지 않아 뉴멕시코주의 로스웰에서 비행접시의 잔해와 외계인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신을 직접 운구했다는 증인도 나타났다.

1952년에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애덤스키가 애리조나 사막에서 우주선에 타고 있던 ‘금성인(金星人)’과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고백(?)했다. 이후 UFO 목격담은 ‘신비주의로의 초대’가 된다.

1983년 뉴욕주 웨스트체스터시에 출현한 V자형 비행접시는 눈부신 ‘UFO 쇼’를 연출했다. 매주 목, 금, 토요일 정기(?)방문했고, 때맞춰 주민들은 마중을 나갔다.

심리학자들은 UFO를 목격자의 뇌리에 있는 어떤 심령현상, 또는 집단 무의식의 투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네스호의 공룡이나 히말라야의 설인(雪人)이 그렇듯이.

또는 묻는다. ‘유폴로지(UFOlogy)’는 과학인가, 신학인가.

외계 생명체에 유난히 집착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도 UFO를 믿지 않았다. “그것은 전통신앙이 약해지면서 나타난 대체재(代替財)”라고 잘랐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E F 러셀 같은 저명한 SF작가들도 UFO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다.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은 분명하다. “UFO가 외계에서 왔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

그러나 1980년 영국 동부 입스위치에 나타난 UFO를 조사했던 영국 국방부의 ‘랜들셤 파일’은 여운을 남긴다.

“확고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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