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몸은 나보다 먼저 말한다’…몸짓이 속삭인다

  • 입력 2004년 6월 18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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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 먼로는 눈꺼풀을 내리고 눈썹을 약간 올린 게슴츠레한 눈을 통해 순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목을 노출시킴으로써 상처받기 쉽고 섹시한 모습을 연출했다.사진제공 청림출판
메릴린 먼로는 눈꺼풀을 내리고 눈썹을 약간 올린 게슴츠레한 눈을 통해 순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목을 노출시킴으로써 상처받기 쉽고 섹시한 모습을 연출했다.사진제공 청림출판
◇몸은 나보다 먼저 말한다/피터 콜릿 지음 박태선 옮김/448쪽 1만9500원 청림출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한 장의 사진을 본 일본인들은 엄청난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진은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의 항복문서를 받는 자리에서 히로히토(裕仁) 천황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천황은 팔을 내려서 양손을 다리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반면, 맥아더 장군은 팔꿈치를 옆으로 세운 채 양손을 허리에 올려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양손 모양은 항복문서에 쓰인 어떤 말보다도 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텔(Tell)’이라고 불리는 몸짓 언어의 의미를 풍부한 예와 함께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텔’이란 포커 게임에서 들고 있는 패에 따라 바뀌는 사람의 표정 몸짓 버릇 등을 의미하는 ‘포커 텔(Poker Tell)’에서 유래한 말이다. ‘텔’은 단순한 몸짓만이 아니라 말투, 옷차림, 서 있는 자세, 눈짓, 걸음걸이, 음성의 높낮이, 생김새, 땀, 담배를 잡는 방식 등 모든 표현 행위를 포괄하는 용어다.

저자는 “‘텔’은 때때로 본인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고 말한다. 어떤 ‘텔’은 두뇌의 무의식적 과정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의식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텔’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직접 설명해 주는 것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감정의 지표가 된다. ‘텔’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되지만 미묘한 정서적 긴장 속에서 맺어지는 남녀의 관계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텔’은 문자나 음성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의사까지도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녀 관계에서 남자들은 보통 자신들이 먼저 행동하고 ‘속도’를 조절한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나이트클럽에서든 카페에서든 혹은 도서관에서든 먼저 행동하는 쪽은 언제나 여성이다. 여자가 먼저 ‘접근 텔’을 발생시켜 남자의 접근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자기가 실내를 가로질러 여자에게 다가갔으니 자신이 주도권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다가와도 좋다는 여자의 신호에 따랐을 뿐이란 설명이다.

이런 경우 여자가 접근을 ‘지시’하는 ‘텔’은 여러 가지가 있다. 1∼2초 동안 시선을 상대 남자에게 고정시킨 다음에 고개를 돌려 무관심한 듯이 눈을 살짝 외면하는 ‘흘끗 보기’, 남자와 눈길이 마주쳤을 때 눈꺼풀을 살짝 치켜올리며 눈을 깜빡거려 상대의 주의를 사로잡는 ‘깜빡거리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 젊음을 과시하는 ‘머리카락 정돈하기’, 짧은 순간 입으로 흘리는 ‘미소’….

만일 이런 ‘지시’도 하지 않았는데 남자가 접근을 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여자에게서 관계를 ‘지배’할 기회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위기상황을 빠져나오는 방법은 고분고분한 것처럼 행동해 남자가 여자의 ‘지배’하에 있음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자신의 의도가 전혀 성적인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상황을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눈썹, 어깨, 미소, 코, 시선, 음성 높이, 손, 키스 등이 표현하는 수백 가지 ‘텔’들을 통해 감정을 섬세하게 주고받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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