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 천사]<24>재활치료 받으며 봉사활동 박정미 경사

  • 입력 2004년 6월 11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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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28일.

서울 마포경찰서 정보과의 박정미 경사(41·여·사진)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1986년 경찰에 입문해 의욕적으로 일해 왔던 박 경사는 그때 갑작스러운 현기증과 함께 경찰서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병명은 급성 뇌출혈. 좌반신이 완전히 마비돼 평생을 누워 살아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 경사는 곧 마음을 다스렸다.

“몸도 가눌 수 없는 상태였지만 절망스럽지는 않았어요. 이번에 내가 다시 일어나면 남은 생을 어떻게 가치 있게 꾸려갈까를 생각했죠.”

두 달간 병원신세를 지고 나온 박 경사는 바로 재활훈련과 함께 경찰직에 복귀했다. 주위에선 만류했지만 그럴수록 더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우리가 받은 복을 이제 남들에게 나눠주자”는 남편 김점욱씨(45·공무원)의 격려는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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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 복귀한 박 경사는 먼저 경찰의 본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봤다. 모든 업무가 중요하지만 박 경사는 자신이 속한 정보과의 특성을 살려 관할 구역의 독거노인이나 소년가장들을 꼼꼼히 파악했다. 그리고 이 지역 기업체들을 설득해 함께 정기적으로 찾아가 밥도 하고 빨래도 하며 도움이 될 일을 찾아 나섰다.

“이 지역에는 어렵고 힘든 분들이 무척 많아요. 하지만 그분들이 고마워하는 건 물질적인 도움이 아닙니다. 그저 틈 날 때마다 찾아가 친구가 되어주면 그걸 가장 좋아합니다.”

박 경사의 봉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관할 지역 학교장, 동네 유지들과 함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조성하고, 남편과 함께 ‘한국시민자원봉사회’에 가입해 양로원과 보육원을 돌보는 민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경사는 아직 몸이 완전치 않다. 지금도 매일 아침저녁 재활운동을 해야 하고 조금만 무리하면 말하는 게 힘들고 심한 두통이 몰려온다.

오랜 동료인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계의 안혜정 경사(39·여)는 “몸도 불편하니 무리하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며 “남을 도울수록 힘이 더 솟는다고 할 땐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박 경사는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내가 힘들고 가진 게 없어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면 된다는 것.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한동안은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전 일어났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아직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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