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성서의 땅으로 가다’…聖地가 왜 화약고 되었을까

  • 입력 2004년 6월 4일 17시 19분


◇성서의 땅으로 가다/권삼윤 지음/287쪽 1만5000원 북폴리오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이집트 문명권인 나일 삼각주 지역을 연결하면 초승달을 옆으로 뉘어 놓은 형상이 된다. 이 지역을 근대 미국의 이집트학자 제임스 브레스테드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고 명명했다. ‘비옥한’이란 표현은 충적토가 쌓임으로써 농경의 적지가 되었음을 표현한 것.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문명의 발상지만은 아니다. 인류 최고의 저작물인 성서, 그중에서도 특히 구약성서의 인물들이 활동했던 무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모세 오경’의 무대가 되는 에덴동산, 바빌론, 가나안 땅,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시나이산, 이집트, 예루살렘 등을 답사하면서 성서 속에 나오는 창조와 출애굽 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내가 중동 땅을 여행하면서 줄곧 받은 질문은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라는 것이었다. 내가 ‘믿는 종교가 없다’고 하면 그들은 처음 본다는 듯한 반응이다. 정말 중동 땅에는 종교 없이 사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이곳은 세계적인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는 물론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국교로 삼았던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등이 태어난 ‘종교의 땅’이다. 문명 여행가인 저자는 이곳에서 기독교뿐 아니라 농경과 유목문명, 일신교와 다신교 문명이 어떻게 부딪치면서 살아왔는지 풍부한 해설을 곁들인다.

아브라함과 모세의 발자취를 따라 이집트와 이라크, 이란 등 먼 길을 여행한 저자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유대인, 기독교도, 무슬림 공통의 성지인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첫 왕국인 이스라엘 왕국이 도읍했던 곳으로, 기독교도들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했던 곳으로, 무슬림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이곳 모리아산의 바위를 밟고 승천했다는 이유로 예루살렘을 성지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예루살렘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이에 대해 그는 “종교적 문제보다도 ‘땅’이 더 큰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 이곳은 주인 없는 황무지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고 있던 땅이었다. 이 때문에 여호수아도 토착민과 7년을 싸운 뒤에야 비로소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었고, 2000년간 유랑생활을 마친 유대인들이 이곳에 다시 나라를 세울 때도 수차례 중동전쟁을 치러야 했다.

저자는 “기독교는 ‘땅’에 대한 집념을 던져버렸기에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었지만, 유대교는 그렇지 못해 지금껏 민족종교로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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