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이방인, 신, 괴물…’ 차별은 보이지않는 폭력

  • 입력 2004년 5월 28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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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신, 괴물-타자성 개념에 대한 도전적 고찰/리처드 커니 지음 이지영 옮김/515쪽 2만3000원 개마고원

16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그림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을 보면, 우물을 기준으로 화면이 대조적으로 분할된다. 좌측에는 세속적 여인이 화려한 옷을 입고 뽐내고 있는 반면 우측에는 한 여인이 화사한 금발의 모습으로 벗은 채 있다. 후세의 많은 미술사가들은 이 그림을 신성과 속세, 혹은 선과 악의 극단적 대립이라는 중세적 도식의 연장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 출신의 미술사학자인 파노프스키는 이 그림에서 대조적인 두 여인이 쌍생아임에 주목하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렸다. 이 그림은 속세나 악이 신성(神聖) 또는 선의 타자(他者)가 아닌 동일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신플라톤주의적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타자라고 취급한 것에 대한 부당한 평가다. 이방인이나 괴물은 우리에게 결코 환대받지 못하는 타자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거부감을 느끼고 배척하는 이방인이나 괴물이 사실은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가령 우리는 결코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가장 낯선 타자로 괴물을 상정하지만, 그런 괴물에 초자연적 힘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괴물을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적 타자가 광기라면, 사실상 이성과 광기는 타자가 아닌 하나의 쌍생아라는 미셸 푸코의 변증법이 이 책에도 적용될 것이다.

타자(성)의 문제는 현대 철학, 특히 포스트모던 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핵심적 문제다. 이들은 동일성의 논리에 바탕을 둔 근대철학이 타자를 배척함으로써 눈에 드러나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타자성의 논리를 전개한다.

저자는 타자를 다루는 기존 입장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타자를 우리와 완전히 단절된 이질적인 것, 즉 그야말로 완전한 타자로 보는 초월적 입장이다.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나 리오타르의 ‘숭고’처럼 이들은 타자를 우리와 언어적으로 교감할 수 없는 완전한 이질적 존재로 봄으로써 사실상 어떤 타자에 대해서도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그 자체로 환대한다. 반면, 타자는 또 다른 나 자신의 얼굴일 뿐이라는 내재적 입장은 지크문트 프로이트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경우처럼 결국 타자를 병리학적 현상과 관련시킨다.

이 책이 제시하는 타자수용의 길은 이런 양극단의 중간에 있다. 저자는 판별적 해석학 혹은 비판적 해석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것은 빌헬름 딜타이나 한스게오르크 가다머가 보여줬듯이 해석자와 피해석자라는 두 자립적 타자가 만나는 지평의 융합과정을 의미한다. 이 입장은 해체주의처럼 모든 타자를 무조건 환대하지도 않고 정신분석학적 입장처럼 타자를 묵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설명은 거기서 그치고 만다. 제3의 입장에 대한 설명보다는 타자에 대한 기존의 담론들을 명쾌하게 분석하고 유형화시키는 데서 저자의 탁월함이 발견된다. 이 책의 약점이자 동시에 강점이다.

박영욱 한국디지털대 외래교수·서양철학imago@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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