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헌법의 풍경’…특권의식에 빠진 법률가

  • 입력 2004년 5월 28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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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신의 명령과 같은 절대 규범이 사라진 세상에서 정의는 토론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헌법재판소 법정 내부(왼쪽)와 대법원 청사 대법정 입구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동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신의 명령과 같은 절대 규범이 사라진 세상에서 정의는 토론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헌법재판소 법정 내부(왼쪽)와 대법원 청사 대법정 입구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동아일보 자료사진

◇헌법의 풍경/김두식 지음/311쪽 1만2000원 교양인

문민정부 초기, 군 법무관 훈련을 위해 사관학교에 입소 중이던 후보생들의 소지품에서 술병이 적발됐다. 외박 통제 등의 가벼운 징계가 내려졌지만 놀랍게도 후보생 전원은 ‘식사거부’로 맞섰다. 사흘 뒤, 징계는 유야무야됐다.

이런 식의 과정을 거쳐 법관이 된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식사 거부’에 동참했던 후보생 중 하나인 저자는 말한다. “특권의식은 소리 없이 삶 속에 젖어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법률가들의 특권 아래 ‘주인을 잃고 길바닥에 나뒹굴게 된 여러 기본권들’을 이야기한다. 왜 ‘헌법의 풍경’을 이야기할까. 법률가들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헌법에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헌법 제11조 제2항)

법조계에는 ‘판검사와 변호사의 관계를 점수로 환산하는’ 데이터베이스까지 등장했다. 사법연수원을 함께 다녔으면 2점, 고교 동창은 3점….

변호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찾는 대신 판검사들에게 읍소하는 데만 열중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변호사의 개업 적기는 판사 경력 10년 전후다. 친한 판사들이 한창 단독판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합격으로 명예를 얻고, 판검사로 권력을 맛보고, 변호사로 돈방석에 올라앉는다. 문제는 법률가들의 이런 삶 속에 법률 소비자들이 고통과 차별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쓸데없이 어렵게 만든 법률용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혹 일반인을 법률로부터 소외시켜 율사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장벽은 아니었던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헌법 제12조 제2항)

헌법에 따르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걸어 나올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강제수사를 하려면 영장이 준비돼야 한다. 알리바이도 피의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알리바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구속’이란 수사를 위해 신병을 확보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처벌로 작용한다. 피의자 단계에서 인격은 철저히 짓밟히지만 판결은 오히려 관대하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헌법 제37조 제2항)

저자는 헌법의 기본권 정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신앙, 표현의 자유는 인정돼야 한다. 권력자들이 ‘인정한다, 그러나’라며 필요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을 규제하면 국가가 괴물로 돌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어떤 나라가 괴물이냐’라는 것이 아니다. 국가란 본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

저자는 초년 검사 시절 우리 사법 현실에 실망해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아내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주부(主婦)’ 아닌 ‘주부(主夫)’로 살았다. 지금은 한동대 교수로 전직해 형사소송법 등을 가르치며 사건 수임은 하지 않아 ‘무늬만’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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