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봉/정부와 재계 ‘서로 다른 꿈’

  • 입력 2004년 5월 27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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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만났다. 대통령은 기업 규제를 풀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고 15대 그룹 총수들은 금년에 지난해보다 34% 늘린 4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화답했다. 재계의 약속대로 이번 회동이 투자 활로를 대폭 여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국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투자는 시장이 결정할 문제▼

이번 모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대통령이 모처럼 재계와 화해의 장을 마련하고 새삼 경제회복 노력을 천명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덕담이 오가는 이 짧은 모임에서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인식 전환이 정말 이뤄졌을까. 기업은 할 말을 다하고 정권에 대한 의구(疑懼)를 해소한 것인가. 작년 6월에도 효자동 삼계탕 집에서 똑같은 이들이 모여 화기애애한 언약을 주고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 뒤 어떤 기업환경과 투자가 이뤄졌는가.

오늘날 한국경제나 투자문제의 본질은 바로 이런 모임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준다. 자유기업시장체제에서 투자는 시장이 결정할 문제다. 기업이 시장에서 예상되는 기대수익과 위험요인, 나와 경쟁자의 능력을 모두 조사검토하고 경영진과 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결정할 일이다. 대통령이 재벌총수를 특별히 만날 일은 없다. 이들의 체통, 애국심, 자선심이 투자방정식의 변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과의 회동에 큰 비중을 둔다. 시장 외적 조건에 너무 의존해 대통령이 대기업 경영자를 일년에 한두 번 만나 투자를 부탁하고 선물을 주고 기업은 대규모 투자를 언약하는 따위의 일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 상황에 좌우되는 투자라면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한 것인가. 차후 대통령의 마음이 변하면 또 어찌 하는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정부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기업간의 의견조정은 더욱 중요해졌으나 양자간의 불신과 인식의 괴리는 더 커지고 경제는 골병을 더해간다. 이번 모임에서는 기업에 미소를 보냈지만 정권의 진정한 관심은 여전히 분배, 복지 및 약자의 기회확대에만 쏠려있는 것 아닌가. 기업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기득권 집단’이고 어떻게든 개혁을 회피하려는 집단이며, 경제위기는 재계와 일부 언론이 과장하는 허깨비이고 기업과 시장을 개혁할 때 성장잠재력은 회복될 것으로 본다. 대통령이 기업의 책무에 대해 일설하고 “이윤 논리에 따르더라도 애국심을 갖고 경영하리라는 믿음을 갖는다”고 한 것은 이런 기업관의 소산이다.

기업 또한 정부를 장래 운명을 같이 설계할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정권은 반(反)기업정서로 뭉친 세력이라 법과 규칙보다는 ‘대화 타협’과 여론이란 이름을 내세워 기업이익을 탈취할 수 있는 존재다. 장래가 확실해질 때까지 투자는 미루자.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라니 사소한 것이나 챙기자….”

이게 기업의 본심 아닌가. 이번에 대기업이 큰 투자를 계획했다니 반길 일이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30대 그룹의 1·4분기 투자집행액은 계획의 16%, 7조4000억원에 불과했다. 규제문제만 해결되면 이들은 약속한 투자를 100% 이행할 것인가. 본심은 감추고 시간만 축내면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경제외적 상황에 발목잡힌 경제▼

일본과 미국 경제는 살아나고 중국은 호황을 억제 못해 고심 중이다. 이런 마당에 유독 한국경제만 늪 속을 헤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경제외적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는 동상이몽 중이다. 정권은 그들이 사회 전체에 풍미시킨 반(反)시장적 제도와 풍토를 손댈 생각이 없다. 기업 또한 이에 정면 도전할 용기가 없다면 자생적 경제활성화의 길은 찾을 수 없다. 이러다가 정부가 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할당하는 체제가 돼도 기업은 할말이 없을 것이다.

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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