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따로 뛰는’ 손기정기념관

  • 입력 2004년 5월 19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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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고 동창회가 서울 중구 만리동 옛 양정고 터에 지은 손기정기념관이 14일 문을 열었다. 1977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광진구 능동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 마련한 손기정기념관에 이어 두 번째 기념관이 생긴 것이다.

양정고 동창회는 2002년 11월 15일 동문인 손 선생이 타계하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어린이회관 내 기념관이 사실상 문을 닫아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린이회관 내 기념관이 셔터를 내린 것은 93년. 육영재단이 각종 소송에 연루되면서 재정난을 겪게 되고 이에 따라 소장품의 관리 보존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어린이회관측은 “상시개관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요청이 있을 때마다 기념관을 열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양정고 동창회와 어린이회관이 서로 기념관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동창회측은 “고인의 유족이 더 이상 어린이회관을 못 믿겠다고 한다”며 “기념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형편이면 유품을 우리에게 넘겨야 한다”는 입장. 반면 어린이회관측은 “3, 4개월 뒤 독일에서 새 전시장치를 들여와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며 “기념관의 정통성은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양정고 동창회 기념관에 전시된 유품은 손 선생이 받은 훈장과 각종 사진자료 등 100여점. 반면 어린이회관 내 기념관에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받은 금메달과 월계관, 상장 등 수백점의 유품이 보관돼 있다.

손 선생은 생전에 “내가 죽은 뒤 기념품을 꼭 한 곳에 모아 달라”고 여러 사람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민족의 얼을 일깨운 ‘거인’. 그러기에 그의 유품은 특정 기념관의 소유물이 아니라 온 국민의 것이다.

누구나 기념관을 찾아 한자리에서 유품을 둘러보며 고인의 업적을 기릴 수 있도록 양정고 동창회와 어린이회관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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