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칼럼]日-中‘차가운 정치, 뜨거운 경제’

  • 입력 2004년 5월 13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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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업에만 매달려 온 일본의 큰 은행 조사담당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일중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성격, 특히 2세 정치인이란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려서부터 잘못을 저질러도 누군가 뒤를 돌봐주는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가 이상해져도 누군가 나서서 해결해 주겠거니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전자회사 사장은 또 이렇게 말한다.

“현재 중국 비즈니스에 있어서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은 고이즈미 총리다.”

중국 비즈니스를 하는 일본 경제인들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고집하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얼마나 열이 받아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일중 관계는 ‘정랭경열(政冷經熱)’로 불린다. 정치분야는 싸늘한 상태지만 경제 분야는 뜨겁다는 것. 이 때문에 대 중국관계에 있어 정경불가분론, 정경분리론이 나왔다.

정경불가분론은 정치관계가 이대로 가면 언젠가 경제분야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경제분야의 열로 정치분야를 덥혀야 한다는 것.

정경분리론은 현재 정치관계는 나쁘지만 경제분야는 잘 나가고 있으므로 굳이 정치관계를 좋게 만들려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중국경제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일본 기업인들은 반일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오싹오싹 느끼고 있다. 작년 말 프랑스의 한 은행이 중국에 진출한 일본의 200개 회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80%가 ‘양국간의 정치적 긴장이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일본의 종합상사 철강 조선 건설기계 가전 기업들이 정계를 상대로 진정을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없다. 1970년대 초 국교정상화 때 기업이 정계에 가한 압력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요즘 기업은 구조조정에 바빠 정치 로비를 할 돈도 사람도 시간도 없다.

경제산업성은 대중 강경파인 ‘의연파’가 대를 잇고 외무성은 ‘팔짱파’, 자민당 내 세력은 ‘초연파’가 된 상태다.

고이즈미 총리는 정경분리론을 믿는 것처럼 보인다. 2년 전 중국위협론이 한창일 때 “중국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고 말했다. 중국에 확실한 정치적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대중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이 노력하는 만큼 중국도 응분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일본의 내정(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내정문제라고 믿는다)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과의 차이가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대중(對中) 게임의 전제는 일본만 중국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도 일본을 필요로 하므로 문제가 생기면 곤란한 것은 중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제가 언제까지 통용될까.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더 깊어지면 일본에 대해 더 고자세로 나올 것이다.

일본의 중국 의존도는 현재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혼다에 이어 도요타, 닛산 등이 중국에 본격 진출함에 따라 양국은 더욱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다. 일본의 대 중국 의존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상호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뜻한다.

경제의 상호의존도가 높아질 때 경영을 잘하면 평화적 상호의존을 낳는다. 그러나 경제관계가 긴밀해질수록 거기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심리적 반발과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려는 정치적 사고가 분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중국경제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대만에서 그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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