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미국 ‘LA폭동’ 발생

  • 입력 2004년 4월 28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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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흑인은 가난한가?”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은 미국사회의 오래된 뇌관(雷管)을 건드렸다.

그 본질은 흑백(黑白) 갈등이었다. 백인사회의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그 극단의 소외감과 분노의 표출이었다. 로드니 킹 구타사건과 백인경관들에 대한 무죄평결이 그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불똥은 엉뚱하게, 아니 ‘교묘하게도’ 한인 사회로 튀었다.

흑인과 히스패닉 폭도들은 사흘 동안 한인타운을 유린했다. 세 집에 한 집꼴로 불이 나 상점 2800곳이 파괴되고 4억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백인 주택가에는 밤새 헬기를 띄우고 무장경관을 배치해 놓았는데도.

흑백벨트 사이에 ‘끼인’ 한인타운은 폭동의 완충지대였고, 방화벽이었고, 총알받이였다. 언론은 노골적으로 ‘한-흑(韓黑) 갈등’을 부추겼다. 흑인밀집지역의 상권을 장악한 한인들은 잔뜩 미운털이 박혀 있었으니.

LA폭동은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이었다.

폭동의 진원지인 ‘사우스 센트럴 LA’는 풍요의 도시 한복판에 폭격을 맞은 잔해(殘骸)처럼 가라앉아 있는 흑인 빈민가다. 배우지 못하고 일자리도 없는 흑인들이 ‘주변’의 삶을 떠돌며 가난을 대물림해왔다.

1980년 레이건 정부 이래 공화당의 우파(右派)정책은 흑인의 빈곤을 양산했고, 무력감과 절망감은 깊어만 갔다.

‘사회적 허리케인’이라고 불리는 흑백갈등. 그것은 어찌 보면 미국의 원죄(原罪)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무력으로 정복했던 태생(胎生)의 한계이자 치부(恥部)인 것이다.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고?

그러나 소수인종이 백인들의 내부사회에 진입하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미국의 주류사회를 ‘유리천장(glass ceiling)’에 비유할까. 밑에서 위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결코 올라갈 수는 없는.

용해되지 않고 섞여 있는 ‘샐러드 볼(salad bowl)’, 그것이 오늘의 미국이다.

그러나 ‘민들레는 화단을 고집하지 않는다’(영국 속담)고 했던가.

한인들은 강했다. 참으로 억척스러웠다. 쓰러진 바로 그곳에서 일어섰고, 다시 둥지를 틀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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