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국회의원 당선자와 부나방

  • 입력 2004년 4월 27일 18시 47분


요즘 행사 초청장이 부쩍 많이 나돈다고 한다. 국회의원 당선자 축하 모임을 알리는 거다. 우편으로, e메일로, 전화로…. 대학이나 중고교 동창회에서, 종친회에서, 향우회에서, 이런저런 친목회에서….

왜 이런 행사에 사람들이 몰리는가. 대의민주주의를 실행할 대표가 뽑혔다고 진심으로 축하하기 위해서일까. 가시밭길 유세 도정(道程)을 잘 참아내 ‘영광의 금배지’를 달게 된 그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내기 위해서일까. 앞으로 펼쳐질 4년간의 의정생활을 제대로 하라고 격려하기 위한 것일까.

좋은 뜻으로 보자면 그렇다. 그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뜻을 전하는 모임이리라. 이번 선거의 당선자들은 대부분이 사상 유례없이 돈 덜 드는 선거를 치러 ‘선거혁명’을 이룬 주역이 아닌가. 격변하는 전환기에 한국 정치를 이끌어 갈 막중한 책임을 진 선량들 아닌가.

비판적인 시각으로는 사뭇 달라진다. 금배지라는 권력의 상징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 떼처럼 보인다.

모임의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 유난히 설치며 주도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고 이들은 이벤트가 성황을 이루도록 여기저기를 건드려 참가자들을 끌어들인다. 이들의 일부는 당선자에게 눈도장을 찍고 나중에 갖가지 청탁을 하는 모리배(謀利輩)일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을 자연인과 분리해 제도(institution)로서 생각하는 ‘제도의식’은 가져 본 적이 없다. ‘연줄’을 악용해 부당한 사익을 좇는 버릇이 몸에 뱄다.

당선자도 다음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하거나 정치후원금을 기대해서 이런 초청을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으리라. 유세기간엔 엄격한 선거법에 신경이 쓰여 회식 자리에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선거는 끝났고 초청자들이 비용을 부담하니 호텔이나 고급 식당에서 열리는 축하회에 가도 걱정될 게 없지 않으랴.

행사장 안에 들어가 보자. 끈끈한 유착(癒着)의 기회를 노리는 부나방들의 붕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아 가고 있지 않은가.

어느 당선자가 들려 준 황당한 청탁 이야기…. 당선 사실이 알려진 직후 운동권 후배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는 의례적인 축하인사를 한 뒤 골프장 주말 부킹을 부탁하더라는 것이다.

또 다른 당선자는 동창생, 친지, 지역구 주민들이 건네는 취직 부탁 이력서가 벌써부터 수북이 쌓여 골머리를 앓는다고 털어놓았다. 백수 친척을 보좌관, 비서관으로 채용하라고 문중에서도 압력을 넣는다고 한다.

이런 건 약과다. 혹 굵직한 청탁이라면 뇌물이 오갈 것이고 무슨무슨 ‘게이트’로 비화될 수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들끼리 저지른 비리 사건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지 않았는가. 이 때문에 한국은 ‘정실(情實) 자본주의’ 국가란 오명을 쓰고 외환위기를 자초하지 않았는가.

당선자들은 4년 내내 논어에 나오는 “나에게 이로울 만한 일을 보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먼저 생각하라(견리사의·見利思義)”는 경구(警句)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축하 모임에 가는 분들에게 당부한다. 당선자를 진정 아낀다면 떳떳하지 못한 부탁을 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하시라고…. 당선자가 부정부패의 늪에 발을 내딛지 못하도록 부릅뜬 눈으로 감시하리라 다짐하시라고…. 방명록을 ‘청탁 배격 서약서’로 만들어 참석자 모두가 서명하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 아닌가.

마침 29일 낮 서울시내 어느 호텔에서 출신 대학 기준으로 보자면 최다수 당선자를 배출한 모 대학의 당선자 축하연이 열린다고 한다. 당선자와 참석자들이 누구인지 주목하겠다. 물렀거라, 부나방들아….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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