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2년 퀴리 부부 염화라듐 정제

  • 입력 2004년 4월 19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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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모든 저명인사 가운데 명성(名聲) 때문에 부패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퀴리 부인에게 바친 찬사다.

20세기 과학 혁명의 중심에 섰던 아인슈타인. 그는 과학자의 재능과 업적이 돈과 명예,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강력한 방사성 원소인 ‘신(新)물질’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퀴리 부부.

그들에게 과학은 인류의 도덕적 유산이었다. 그들은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라듐 제조방법을 개발했으나 특허를 내지 않았다. “라듐의 소유자는 지구이며, 그 누구도 이것으로부터 이득을 취할 권리는 없다.”

그들은 나아가 과학에 있어 도덕이란 현재의 연구에 미래의 개연성까지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1903년 퀴리 부부는 노벨 물리학상 시상식에서 묻는다. “자연의 비밀을 캐내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 비밀을 안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과연 인류는 성숙한가….”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 세상은 그를 ‘퀴리 부인’이라고 불렀으나 정작 ‘퀴리 부인의 남편’으로 세상에 가려진 이는 피에르 퀴리였다.

두 사람은 과학의 꿈을 함께 나눈 동지였다. 1902년 우라늄 광석찌꺼기를 정제해 순수 염화라듐을 얻어낸 것은 부부의 공동작업이었다. 마리는 피에르가 죽은 뒤에도 연구를 계속해 1910년 미량의 금속라듐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언제나 꼭 부둥켜안은 채 잠이 들었다’는 피에르가 없이 마리의 두 차례 노벨상 수상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부인 밀레바 마리치가 그 뛰어난 과학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권위주의적 성격에 치여 채 피지 못하고 시들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새로 발견한 방사성 원소에 넋을 빼앗긴 채 자나 깨나 그 곁을 지켰던 마리. 그는 결국 방사능으로 얻은 백혈병으로 숨졌다. 피에르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부부는 오로지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신전’(파스퇴르)인 과학에 헌신했다.

‘인간은 재능만으로 결코 위대해지지 않는다!’ 그들의 삶이 그러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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