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기현/국가테러

  • 입력 2004년 3월 24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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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저항운동이 테러라면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저지르는 짓은 ‘국가테러’다.”

22일 이스라엘의 미사일공격으로 살해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 단체 하마스의 지도자 아메드 야신은 생전에 이런 주장을 폈다. 국가테러란 어떤 국가의 테러 개입뿐 아니라 국가가 주도한 모든 불법적인 폭력까지 포함한다. 국가테러의 전형적 방식 중 하나가 이번의 야신 살해처럼 적의 지도자를 노리는 ‘표적 살해’다. 아랍 저항세력의 지도자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초강대국이 국가테러의 주체라면 상황은 더욱 곤란해진다. 러시아 지정학아카데미의 레오니드 이바쇼프 부원장은 “미국도 테러국”이라는 과격한 주장을 편다. 미국의 대(對)테러전쟁 역시 국제법과 국제여론을 무시한 국가테러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자위권과 예방전쟁론 등이 있다. 예상되는 테러의 피해를 미리 막기 위해 선제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테러의 표적이며 피해자인 미국이 한편으로는 테러의 주체라는 주장은 테러가 무엇이고 누가 테러리스트인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테러와 싸우는 미국의 테러는 누가 막을 것인가.

▷미국을 비난하는 러시아도 떳떳한 것은 아니다. 지난달 카타르에서 젤림한 얀다르비예프 전 체첸 대통령이 살해됐다. 카타르 당국은 러시아 첩보요원 2명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러시아는 1996년에도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 대통령을 미사일로 살해했다. 서방은 이런 러시아를 비난한다. 서로 자신의 행위는 대 테러전이란 이름으로 옹호하고 상대방의 폭력은 국가테러로 몰아붙이는 격이다.

▷국가테러는 자국민을 상대로도 자행된다.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대숙청이나 북한의 광범위한 정치범 수용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논란이 된 최종길(崔鍾吉) 서울대 교수의 죽음이 옛 중앙정보부의 소행이었다면 이것도 국가테러에 포함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국가라고 비난하고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때마다 이를 국가테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반도는 테러와는 무관한 지역’이라며 태평스레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김기현 모스크바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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