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중간예술’…사진으로 본 엘리트의 계급의식

  • 입력 2004년 3월 5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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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예술/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주형일 옮김/512쪽 2만5000원 현실문화연구

장 폴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참여 지식인의 전통을 이어 갔다는 평가를 받는 농촌 출신의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프랑스의 엘리트 학교인 에콜 노르말(ENS)을 거쳐 지성의 요람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했다. 독창적 저술과 사회적 참여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전후의 대표적 사회학자이자 살아 있는 지성인이었다.

부르주아나 명문가 출신이 아닌 그가 학문적으로 성공한 것은 사회적 계급과 신분이 비교적 안정되게 재생산되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에콜 노르말 출신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배반한 산물이다”라는 반항적 발언이 웅변하듯이 그는 프랑스 사회의 암묵적 질서(신분 계급)를 파헤치고 ‘진정한 대항권력’이기를 자처했다.

학문적으로 그는 ‘중간예술’, ‘구별짓기’, ‘재생산’ 등의 굵직한 연구서를 통해 사회학, 문학, 인류학, 미학, 철학, 교육학, 커뮤니케이션학, 정치학 등 인문사회학 전반을 포괄하는 거대한 이론적 담론 구축을 꿈꿨고 어느 정도 그것을 실현했다. 그는 언론에 기생하면서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fast thinkers)을 맹렬히 비판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실천적 이론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의 사상이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론이 철저히 자기반성적이고 자기모순을 과감히 수용하는 객관적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1965년 발표된 이 책 ‘중간예술’(고급 예술과 민중문화 사이에서 위치를 확고히 하지 못한 중간계급의 매체로서의 중간예술)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씌어졌고 그의 이론을 견고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진의 사회적 사용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단순히 사진에 관한 에세이가 아니라 저자 사상의 인식틀과 문제 제기 방식, 방법론을 확연하게 보여 주는 부르디외의 역저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 서구 인문사회과학이 펼쳐 보이는 지적 파노라마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부르디외 사상의 핵을 이루는 아비튀스(habitus·다양한 차원의 사회 메커니즘이 서로 맞물려 우리의 무의식까지 지배하는 구조), 에토스(ethos·집단적 정서), 구별짓기, 계급 등의 개념이 사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며 이 연구를 통해 그의 이론이 더욱더 공고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분석에서 우선 그는 개인이 사진행위와 맺는 관계가 ‘매개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사진행위의 미학은 ‘암묵적 가치체계, 달리 말해 계급의 소속과 관계있는 에토스의 차원’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의 의미 분석은 사진이 특정한 시대, 계급, 예술집단의 상징체계에 속한다는 점에서 사진이 드러내는 잉여 의미를 해독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 소홀히 다뤄온 사진에 관한 부르디외의 분석은 그 독창성과 방대함으로 인해 40여년이라는 원전과 번역의 시간적 거리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aixpr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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