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12회…아메아메 후레후레(11)

  • 입력 2004년 2월 27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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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마지막 아침을 오래오래 끌고 있다.

사찰계는 우산도 비옷도 없는 모양이다.

구멍이 깊어지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30분?

그렇게 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근은 숨을 들이쉬고 깊이깊이 삼켰다.

하지만, 아직, 살아 있다.

아무 생각이라도 하자.

마음이 멀리로 떠나가고 있다.

그래도, 생각을, 아무 생각이라도.

하지만, 시간이, 없다.

해야 할 말도, 없다.

비뿐.

비.

아메아메 후레후레

카아상가 오무카이

우레시이나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그만.”

땅을 파는 소리가 그쳤다.

빗소리만 남았다.

우근은 자신이 노래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안다.

긴긴 몇 초가 흐르고, 우근은 철사 줄이 파고든 엄지손가락만 빼놓고 나머지 손가락을 좍 폈다가 기도하듯 깍지를 낀다. 꼬마의 팔이 그리고 꺽다리의 팔이 앞으로 쑥 나오면서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면서 둘은 삽을 쥔 채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꺽다리가 구멍으로 뛰어내려 우엉을 뽑듯이 팔을 밟고 삽을 잡아당겼지만, 둘은 마지막 손에 쥔 것을 빼앗기려 하지 않았다. 제길, 이라면서 침을 뱉은 꺽다리는 피가 철철 쏟아지는 뒤통수 옆에 앉아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낼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

귀가 잘려나간 남자가 구덩이 가에 서서 멈칫거리자, 꺽다리는 삽을 야구방망이 잡듯 고쳐 잡고 남자의 등을 후려쳤다.

서른 명 전원이 구덩이로 뛰어들고 나자 꼬마는 두 손에 리볼버를 쥐고 우리를 조준하고, 꺽다리는 삽으로 흙을 퍼붓기 시작했다. 생매장이다! 우리를 생매장시킬 작정이야! 불을 삼킨 것처럼 두 폐가 뜨거워지고, 꽉 움켜쥔 듯 심장이 아팠다. 쿵쿵! 두근두근! 쿵쿵! 두근두근! 쿵쿵! 두근두근!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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