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정치자금 금지'의 함정

  • 입력 2004년 2월 6일 18시 11분


코멘트
국회 정치개혁특위 소위는 최근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기업을 포함해 모든 법인과 단체의 정치후원금 제공을 금지한 것이다. 이에 따른 보완책으로 개인이 정치자금을 내면 1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해 주기로 했다.

이 제도가 연착륙한다면 소액다수가 정치자금을 내는 ‘선진 정치문화’가 실현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정치를 관통해 온 정경유착도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사실이 전해지자 기업들의 걱정이 커졌다는 점이다.

마침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5일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하려면 ‘정치자금을 달라’ 혹은 ‘정치자금을 주겠다’는 의사표현까지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아가 공소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왜 그랬을까?

정치자금 제공 금지에 따른 재계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반발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 보자.

“현재 정치자금 시장에서 공급자는 사실상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개인이 공급자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솔직히 ‘예’라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 상무)

매년 걷히는 불우이웃돕기 성금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을 기업이 부담한다. 기부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정치자금 또한 비슷한 행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모처럼의 정치권 합의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어차피 정치자금 수요가 강력하게 존재하는 상황이다. 확실하게 끊어놓지 않으면 정치권은 ‘정치자금 암시장’에 기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옛날로 되돌아갈 수 있다. ‘불법의 조그만 실마리라도 있으면 엄청난 강도로 처벌하라’고 기업이 먼저 요구하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어서다.”(전경련 이승철 상무)

이럴 바에는 현행법처럼 기업의 정치자금을 일정 수준까지 허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대신 ‘어떤 기업이, 언제, 어느 정치인과 정당에, 얼마를 냈는지’를 속속들이 공개하면서….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법을 바꾸자는 뜻이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종식 경제부기자 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