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길들여지지…' 변덕쟁이 날씨… 네 정체는 뭐야?

  • 입력 2004년 2월 6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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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지 않는 날씨/존 린치 지음 이강웅 김맹기 옮김/240쪽 3만5000원 한승



“그날 밤 사막의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은 뜨겁고 건조한 산타아나 가운데 하나로 산을 가로질러 내려와 머리를 휘날리게 하고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며 피부를 가렵게 했다. 밤마다 술자리는 모두 싸움으로 끝났다. 순하고 귀여운 아내들은 조각칼의 날처럼 곤두서 있었고, 남편들의 목덜미를 노렸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미국 출신의 추리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묘사한 산타아나의 음산한 저주다. 산타아나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하비사막 높은 곳의 뜨거운 공기가 세인트가브리엘 산을 지나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남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이 공기는 압축되어 다시 데워진 후 그곳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바람이 불면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종기가 악화되고 혈전증, 출혈, 편두통 등을 앓는다. 전기가 부족해지고 산업생산성이 낮아지며 우유 생산량도 줄어든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산타아나가 부는 날에는 이 지역의 살인이 평균 14% 증가했다. 1965년 때늦은 산타아나가 불었던 6일 동안 살인사건이 47%나 더 일어나기도 했다.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는 날씨는 산타아나뿐만이 아니다. 허리케인, 토네이도, 엘니뇨 같은 유별난 기상이변 외에도 일상적인 사계절의 변화와 대기의 순환이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적도에서 숲과 사막을 거쳐 극지방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는 ‘인간’들은 또한 가장 다양한 날씨와 맞서며 살아간다.

영국 BBC의 과학다큐멘터리 제작진이 TV프로그램과 함께 기획한 이 책은 날씨의 신비함과 그 위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후 변화의 아름다움과 장엄함, 그리고 그 광포함까지 동시에 보여주는 생동감 있는 사진과 컴퓨터그래픽 덕택에 독자들은 쉽지 않은 주제에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주제는 크게 5가지. 바람, 물, 추위, 더위, 그리고 날씨의 변화다.

▽바람=바람은 날씨의 엔진이다. 따뜻한 남쪽에서 높이 떠올라 폭풍 속을 지나온 공기는 얼어붙은 북극에 도달하고, 북극권을 거쳐 미끄러져 나가면서 남쪽으로 향한다. 바람이 없다면 아름다운 지구는 거대한 가마솥이 될 것이다.

▽물=물은 날씨의 연료다. 비록 우리가 끊임없이 물을 사용해서 모두 소비한다고 해도 지구상 물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지구에서는 똑같은 물이 사용되고 다시 이용된다. 물은 바다에서 증발해 하늘에 머물다가 땅에 떨어지고 결국 바다로 돌아간다.

▽추위=빙하가 점차 두꺼워지는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매년 겨울 북극지방에서 출발한 추위는 점점 확장하면서 심지어 적도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추위는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가장 무섭고도 오래된 적이다.

▽더위=서서히 북진하는 태양과 함께 더위가 북반구 대륙 내부로 이동할 때 천둥과 번개를 품고 찾아오는 여름은 우리 삶에 새로운 활력을 준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들은 목숨까지 앗아가는 잔인한 더위에 경악하고 만다.

▽변화=앞으로의 날씨는 더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의 속도도 빨라져, 더욱 거칠고 많은 비가 동반되는 폭풍이 빈번해질 것이다. 그 주요 원인은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진행돼온 산업화다. 이 ‘불길한’ 변화는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와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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