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단協 조건부 찬성 선언]농민들 양보… 한-칠레FTA 파란불

입력 2003-11-13 18:58수정 2009-09-28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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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구 전국농민단체협의회(농단협) 회장이 13일 정부과천청사 농림부 기자실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조건부 비준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 농림부
《농업시장 개방을 반대해오던 전국농민단체협의회(농단협)가 13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조건부 지지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부의 FTA 추진계획에 일단 ‘파란불’이 켜졌다. 그동안 FTA 얘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농민단체들이 FTA에 대해 처음으로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기 때문. 비록 농단협에서 농민들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지만 농림부와 정치권에서 어느 정도 농민들에 대한 ‘양보’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칠레 FTA 비준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꽤 높아졌다. 또 만약 한-칠레 FTA가 비준된다면 정부가 추가로 추진할 한-싱가포르, 한중일 FTA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련) 등 전국 농민연대 소속 단체 9개가 이번 조건부 지지 선언에 불참했기 때문에 ‘FTA 낙관론’만 펴기에는 다소 이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직력이 탄탄한 농민연대 소속 단체들이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면 ‘표’를 의식한 정치권에서 쉽게 비준안을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타협 의지’ 내놓은 농단협=농단협은 이번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무리가 있으면 타협의 여지를 살려놓겠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지지를 위한 전제 조건을 내걸었지만 비준 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양보도 할 수 있다는 것.

신동헌(申東憲) 농단협 사무총장은 “FTA가 대세인 만큼 농민들이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파이를 얻겠다는 차원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며 “경제난 속에서 ‘농업계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는 만큼 한 발 양보하는 입장에 서겠다”고 말했다.

▽반색하는 정부와 재계=재계는 농민단체의 한-칠레 FTA 지지 의사를 적극 반기고 있다. 한-칠레 FTA가 통과되면 당장 대(對) 칠레 수출이 늘뿐 아니라 한일, 한중일, 한-싱가포르, 한-멕시코 등 현재 추진 중인 FTA가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익(金成翼)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통상협력부장은 “한-칠레 FTA가 발효되면 칠레시장에서 5위로 떨어진 한국 자동차의 점유율이 다시 2위로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 자동차의 칠레시장 점유율은 작년 16.9%에서 올해 들어 13%대로 하락했다. 칠레-유럽연합(EU) FTA 등이 발효돼 한국 자동차업체들이 외국 경쟁사에 비해 더 높은 관세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무선통신기기, 영상기기, 냉장고, 직물 등의 대칠레 수출은 20% 이상 감소했다. 이 같은 품목의 수출도 FTA가 발효되면 작년 수준으로 회복될 전망이다.

김병섭(金炳燮) 외교통상부 다자통상협력과장은 “한-칠레 FTA 발효는 칠레에 대한 수출 회복보다 다른 나라들과의 FTA 체결 전망이 밝아진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진(鄭永珍)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되면 정부가 농업에 대한 부담을 덜고 적극적으로 FTA 체결 무대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민연대 소속 단체들이 열쇠=전농과 한농련 등 전국 농민연대 소속 9개 단체들은 농단협의 FTA 조건부 지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농련 나정한(羅正漢) 총무국장은 “농단협은 생산 품목 단체이기 때문에 집행력이나 조직력 측면에서 농민연대를 따라올 수 없다”며 “19일 열리는 농민대회에서 FTA 반대 의사를 재확인시켜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농민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에서 쉽사리 ‘비준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최근 한-칠레 FTA 비준 지연을 우려하는 여론이 커진 상황에서 농단협의 이번 ‘조건부 찬성’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것만은 분명하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최준구회장 일문일답▼

최준구(崔峻玖) 전국농민단체협의회 회장은 13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이 문제를 놓고 정부와 싸우면서 얻어낸 대책안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차피 가야할 길이기 때문에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언제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인가.

“농단협 산하 20개 단체가 11일 임시총회를 갖고 FTA 비준에 합의했다. 진지한 협의가 있었다.”

―농민단체가 FTA 비준을 촉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솔직히 말해 부담이 컸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과 칠레 정부가 FTA를 타결한 이후 1년 이상 국론이 분열된 것은 국력 낭비다. 욕먹을 각오는 돼 있다.”

―이번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농민들이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 채 FTA 비준이 진행되는 것은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미흡하지만 조건을 추가로 제시해 농업계가 얻을 것은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농림부 쪽에서 이번 결정을 부추긴 것이 아닌가하는 시각도 있는데….

“아니다. 농림부와는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다른 농민단체들은 이번 기자회견에 불참했는데….

“전농이나 한농련 등은 농민연대 소속이기 때문에 이번에 빠졌다. 이들 단체의 입장은 말하기 어렵다.”

―농단협이 전체 농민 의사를 대변할 수 있나.

“농단협에는 국내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전업농중앙연합회와 대한양계협회, 한국포도회 등 생산자 단체가 있어 전체 농민의 80∼90%가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 농민운동 위주인 전농이나 한농련과는 단체 성격이 다르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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