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문과학의 수사학'…수학에도 수사학 담겨있다

  • 입력 2003년 10월 24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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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학의 수사학/존 S 넬슨 외 지음 박우수 외 옮김/602쪽 2만3000원 고려대출판부

퀸탈리아누스는 수사학을 ‘능란한 화술’과 ‘설득의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수사학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시칠리아에서 참주들에게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이 소송과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변론술을 통해 탄생했다. 초기 수사학 책인 코락스의 ‘변론술’에는 이미 서론 본론(논쟁) 결론 등의 형식이 초보적 형태로 기술돼 있다. 프랑스 수사학자 올리비에 르불은 수사학의 매력과 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를 전해 준다.

고대 그리스 시대 티시아스는 설득의 기술을 배우려고 코락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티시아스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지자 수업료를 주지 않으려 했다. 법정에 선 티시아스는 스승에게 “당신이 설득의 기술을 제대로 가르쳤다면 내가 당신에게 보수를 받지 말라고 설득할 경우 이를 받아들여야 하오. 반대로 당신이 그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돈을 지불할 의무가 없소”라고 말했다. 코락스는 “만일 자네가 나에게 한푼도 받지 말라고 설득하면 자네는 내게 보수를 줘야 하네. 반대로 자네가 나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물론 자네는 보수를 지불해야 하네”라고 응수했다. 재판관들은 “영악한 까마귀에 영악한 새끼”라는 말로 판결을 대신했다.

수사학이 인문과학의 영역 밖에서 더 많이 응용되고 있는 요즘, 인문과학의 여러 갈래 속에 숨쉬고 있는 ‘언어와 논증’으로서의 수사학의 다양한 모습을 발굴해내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정치 경제 역사를 전공하는 미국 학자들이 엮은 이 책은 수학 인류학 심리학 정치학 문학해석학 경제학 법학 신학 페미니즘 영역을 학제적으로 가로지르면서 공통의 인식요소를 탐색하고 있다. 특히 수사학과 관계없어 보이는 수학이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같은 과학까지도 수사학 기법으로 쓰였다는 점은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수사학은 기원전 5세기 코락스와 안티포네스의 변론술, 고르기아스의 웅변술과 시적 산문에서 시작된 뒤 소피스트, 이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퀸탈리아누스, 키케로 등의 논증적이고 문학적인 다양한 테크닉이 가미돼 서양 학문의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 변론, 문학이 조화롭게 결합된 수사학을 창안했다. 수사학은 아첨을 위한 맹목적 관습이라는 플라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피스트들에 의해 문체, 변증론, 논증 등이 가미되면서 설득기법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했고 그 전통은 19세기까지 지속됐다. 실증주의와 낭만주의에 의해 비판받으며 일시적으로 주춤했던 수사학은 1960년대 롤랑 바르트, 움베르토 에코 등 유럽의 기호학자들에 의해 그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광고 영화 등을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이미지 수사학’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다양한 전공의 소장학자들로 구성된 번역자들은 전문성을 확보하면서 무게 있는 내용을 정치한 우리말로 잘 소화하고 있다. 이 책은 서양 수사학의 전통과 아울러 현대 여러 학문 속에 여전히 숨쉬고 있는 수사학의 지형을 읽어내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aixprce@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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