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카드 대신 다시 현금 내라고요?

  • 입력 2003년 9월 17일 1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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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들이 얼마 안 되는 밥값까지 신용카드로 지불하기 시작했는데 다시 현금으로 내라는 말밖에 더 됩니까?”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대해 신용카드 업계는 이처럼 푸념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말 ‘현금영수증카드제’를 새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현금영수증카드제란 개인이 현금을 쓰고 신용카드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면 사용 내용이 국세청에 통보돼 집계되고 연말에 소득공제를 해주는 제도다.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는 세금징수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꼽혀온 자영업자들의 세원(稅源)을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세금도 더 거둬들이겠다는 것이다.

‘유리 지갑’이라 불리는 봉급생활자 입장에서 정부의 방침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현금사용에 대한 혜택이 신용카드보다 크다는 데 있다.

정부는 전체 급여의 10%를 넘는 금액의 20%였던 신용카드의 소득 공제 폭을 올해 12월부터 15%로 낮출 예정이다.

이에 비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현금영수증카드제의 소득공제 폭은 총급여 10% 초과액의 25%다. 월 과세표준 100만원이 안 되는 배우자나 자녀 등 직계가족의 현금사용액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어 현금사용이 훨씬 유리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현금영수증카드제가 성공하면 신용사회의 후퇴요, 실패하면 시스템 개발비용만 날리는 ‘루즈-루즈 게임’”이라고까지 비판한다.

또 세원 노출을 극구 꺼리는 자영업자들이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신용카드 사용을 부추겼다가 335만여명(7월 말 현재)으로 늘어난 신용불량자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늘린 신용카드의 사용을 줄이면서까지 다시 현금사용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방침은 경제적 관점에서 납득하기 힘들다.

목적이 자영업자의 세원노출에 있다면 현금에 대한 소득공제 폭을 신용카드와 같거나 낮은 수준에서 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현금영수증카드제를 시행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박중현 경제부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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