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수렁에 빠진 미국

  • 입력 2003년 9월 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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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행정부 내의 각 부처들은 마치 고등학생 패거리처럼 행동하고 있고, 미국의 대(對)이라크 정책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로 마비된 상태다. 국제주의자들과 일방주의자들 사이의 힘겨루기에서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일손을 놓았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엊그제 미국의 이라크정책을 이렇게 질타했다. 이뿐이 아니다. 요즘 미국 언론에는 이라크 상황을 우려하는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폴 크루그먼 같은 쟁쟁한 논객들의 글이 다투어 실리고 있다.

▷전쟁기간 26일, 미군 사망자 138명, 전비(戰費) 480억달러(7월 15일 기준)…. 미국은 5월 1일 이라크전 종전(終戰)을 선언하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했다.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이 반석 위에 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승리의 환호도 잠시, 이라크는 미국에 점차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연이은 폭탄테러로 이라크 정정(政情)은 내전 직전으로 치닫고 있고, 종전 후 미군 사망자 수는 전시 중 사망자 수를 벌써 넘어섰다. 게다가 이라크에 퍼부어야 할 돈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미군 13만6000여명의 한달 주둔비용만 40억달러. 여기에 더해 폴 브리머 행정관은 내년에만 이라크 재건에 수백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라크가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미국 내 강경파도 입장을 바꾸고 있다. 과거 5년간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주 “이라크 내 미군 지휘권을 유엔에 인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 승인도 없이 전쟁을 시작했던 때와는 엄청나게 달라진 태도다. 리처드 펄 국방위원장 같은 대표적인 매파 인사도 “빠른 시일 내에 이라크인들에게 권력을 넘겨주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말만 무성할 뿐 워싱턴은 아직 엉거주춤한 자세다.

▷이라크의 상황은 북한에도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깊이 빠져들수록 북한은 시간을 번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미국 대선까지 있으니 북한으로선 쾌재를 부를 만하다. 하지만 미국에 이라크와 북한은 전혀 다른 대상이다. 6자회담부터가 유엔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전쟁을 시작한 이라크와는 다른 접근방식이 아닌가. 북한이 대화의 기회를 저버리고 시간벌기에만 급급하다가 후세인 정권의 전철을 답습할까 걱정이다. 북한은 ‘이라크교훈’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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