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조선의 뒷골목 풍경'…조선民草들 얘기

  • 입력 2003년 8월 15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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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화가인 김양기의 ‘투전도’. 기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투전판에 술상을 들여오고 있다. 기방이 도박 성행의 진원지였음을 짐작케한다.사진제공 푸른역사
조선시대 화가인 김양기의 ‘투전도’. 기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투전판에 술상을 들여오고 있다. 기방이 도박 성행의 진원지였음을 짐작케한다.사진제공 푸른역사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지음/394쪽 만4500원 푸른역사

이 책은 유흥계를 호령한 별감, 투전에 몰두한 도박꾼, 술과 노래로 일생을 보낸 탕자들, 과거시험 대리 전문가 등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시대 인물과 사회 현상의 뒷얘기들을 담았다.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사회상을 신문으로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먼저 사회면 톱에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을 치료한 명의(名醫) 조광일의 미담 기사가 실릴 것이다. 가죽주머니에 구리침, 쇠침 10개를 넣고 다닌 침의 명수 조광일은 ‘아들을 살려 달라’는 가난한 노파의 간청에 선뜻 따라나선다. 그는 인터뷰에서 “세상 의원들이 제 의술을 믿고 교만을 떨어 서너 번 청이 들어와야 간신히 몸을 움직이며 귀인이나 부잣집만 찾아다니는 작태를 부린다”고 비판하며 “10년 동안 불쌍하고 딱한 백성을 수천명 살려냈는데 앞으로 10년 동안에도 모두 1만명을 살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트렌드 기사로는 조선 후기 유행을 주도한 오렌지족 ‘별감’들의 이야기가 안성맞춤이다. 궁궐의 잔심부름을 하는 ‘별감’은 임금과 가깝다는 이유로 권세와 돈을 휘두르는 밤의 황제였다. 이들은 홍의(紅衣)에 노란 초립을 쓰는 등 화려한 차림을 했으며 헤어스타일은 ‘편월(片月)’, 즉 조각달처럼 꾸몄다. 상투가 풀어지지 않도록 하는 동곳은 호박(琥珀), 망건은 곱게 짠 최고급 ‘평양망건’ 등 사치스럽고 유행에 민감한 장식품을 선호했다. 기생 가객(歌客) 가야금연주자 등을 불러 질펀하게 노는 ‘승전놀음’은 서울의 놀음판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조선 후기 경제가 발전하면서 별감 왈짜 등을 중심으로 사치 소비 풍조가 번졌던 것이다.

사회면 사건 사고 기사로는 대리시험을 치던 유광옥의 자살 소식을 다룰 수 있다. 그는 수험생 대신 답안지를 작성해 주고 돈을 받았는데 받은 돈에 따라 답안지의 수준을 달리했다. 물론 그가 작성한 답안지는 1, 2, 3등을 차지했다. 답안의 문장이 유사한 것을 수상히 여긴 시험감독관이 조사를 벌이자 자살한 것. 당시 과거장에는 대리시험과 협서(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 등이 횡행했다.

소의 도살을 독점했던 서울 혜화동 인근의 반촌(泮村)을 잠입 취재한 내용은 기획르포감이다. 이들은 고유의 언어와 풍습을 가지고 이방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으며 심지어 범죄자가 들어가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한 치외법권 지대였다.

연예면을 장식할 최대의 스캔들은 감동과 어우동이 차지할 것이다. 세종 때 양반 가문의 처자였던 감동은 남편을 버리고 40여명과 관계를 맺었다는 죄목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남자들은 20명만이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감동의 행각에는 ‘성폭행’이 근본적 원인이었다. 감동은 길을 가다가 김여달이란 자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고, 이후에도 수시로 성폭행 당한 뒤 아예 같이 도망갔다. 한 상소자는 성폭행당한 감동이 자포자기 끝에 이 같은 행각을 저질렀으니 원인 제공자인 김여달을 중죄에 처하라고 탄원했다.

사설을 통해 도박에 골몰한 양반들을 비판할 수도 있다. 돼지 치는 사람들의 오락이었던 투전이 조선 후기에 들어 재상과 관원들 사이에 번져 나갔던 것.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낸 원인손은 80장의 투전목을 한번 보면 뒤섞어 놓아도 어떤 패인지 알 정도로 타자(打子·투전판의 고수)였다. 사설에선 위로는 사대부 자제들, 아래로는 서민들까지 집과 토지를 팔아 패가망신한 자들이 많으니 노름을 엄격히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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