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 입력 2003년 7월 25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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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전여옥 지음/256쪽 1만원 해냄

‘일본은 없다’의 전여옥이 다시 일본을 이야기한다.

두 책의 다른 점을 꼽자면, 이 책에는 일본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저자가 ‘사적으로 만난 일본인의 모습, 일본에서 맛본 소소한 즐거움’이 담겨 있다는 것. 그는 일본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서서히 ‘기력을 잃어가는’ 일본을 꼼꼼히 살펴본 뒤 이 책을 썼다.

먼저 그는 일본을 제대로 여행하고 싶다면, 일본인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다면 조용한 여행자로 다닐 것을 제안한다.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전철표를 산 뒤 무작정 아무 역에서 내려 주택가를 탐방해보라고 권한다. 잡화점 옷가게 서점 찻집 등이 좁은 골목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동네를 누비고 관찰하다 보면 관광지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일본의 실체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것.

주택가 탐방을 끝낸 뒤, 저자는 본격적으로 일본의 숨은 얼굴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보통 여행자들이 일본 탐방에 필요한 유용하고 구체적인 정보들을 소개한다. 그중 하나가 음식.

‘미식에 탐닉하는, 혹은 목숨 거는 오늘의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가 아니라 ‘혀로 접근해야 한다.’

일본 식문화의 진수인 스시를 값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부터 신칸센을 타기 전에 꼭 구입해야 한다고 추천하는 도시락 오벤토에 대한 이야기, 나가사키에서 먹어본 중국 짬뽕과 카스텔라, 삿포로 라면의 진한 국물을 맛볼 수 있는 식당, 후쿠오카의 포장마차에서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내놓은 오차즈케(찻물에 만 밥)까지 지역마다 특색 있는 음식과 맛집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렇듯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을 꿰뚫고 있는 가이드와 동반한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한가한 여행담으로만 그치진 않는다. 저자는 ‘변화’라는 코드가 존재하기 힘든 일본인의 삶, 술집 여자나 포르노 여배우가 연예계 스타처럼 10대들로부터 떠받들어지는 사회,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아들보다 딸의 존재가 부모들의 보험이자 희망이며, 최후의 구원으로 여겨지는 나라, 여전히 미국에 대한 동경과 증오를 함께 품고 있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일본과 일본인의 특성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전작들과 달리 뾰족한 가시는 덜하지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자기 생각을 쏟아내는 특유의 문체는 그대로 살아 있어 단골독자들에겐 반가운 선물이 될 듯하다.

어쨌든 조용한 여행자, 숨은 여행자로 일본을 돌아본 저자의 결론은 이랬다.

‘일본은 늙어가고 있다. 아니 늙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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