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특별보좌관 정말 '특별'한가

  • 입력 2003년 5월 18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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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이란 말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론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우수성, 깊이를 지녔다는 전문성 등 좋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정규가 아니라는 예외성, 기존 틀에서 벗어난다는 비정상(非正常)성 등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의미를 함축한다. 누구에게 특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문맥을 잘 살펴봐야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 즉 칭찬인지 비판인지 파악할 수 있다.

▼특보단 ‘얼굴-규모’ 걱정돼 ▼

한동안 장관 특별보좌관제가 논쟁을 일으키더니 이젠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10여명이나 대거 임명할 것이라는 방침이 논란을 낳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DJ정권, 지난 대선, 인수위원회 등에서 공을 세운 인사들과 대통령의 ‘코드’에 맞을 만한 몇몇 사람을 대통령 특보로 임명할 것이라고 한다. 이 특보들은 과연 어떤 의미로 ‘특별’할까.

거론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볼 때 상대적 우수성과 심층적 전문성이 높다는 긍정적 의미로 특별할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능력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 각자의 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쌓은 분들이다. 그러나 기존의 고위공직자들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특정 현안에 대해 남이 갖추지 못한 고유한 전문소양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든다. 이미 청와대와 각 행정부처에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는바 새 특보단이 그들만의 전문성을 내세우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번 특보들은 특별의 두 번째 의미, 즉 비정규적 예외성과 비정상성이라는 의미로 특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업무수행 라인과 다른 또 하나의 라인을 형성한다는 데서, 공식 제도경로가 아닌 비공식 대통령직계 경로라는 데서 특별하다. 물론 이런 비정규성이 필요할 때도 있다. 기존 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꽉 막혀 있는 국정에 활로를 뚫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집권 초 진보적 정책의제가 공화당의 반발과 여론의 역풍으로 좌초되고 정책참모진이 내홍을 겪게 되자 중도주의자 데이비드 거겐을 특보로 임명했다. 거겐씨의 도움으로, 클린턴 행정부는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해 중도로 선회할 수 있었고, 행정부 내부뿐 아니라 의회와의 관계에서도 원만해질 수 있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대북관계에서도 지미 카터와 윌리엄 페리 등 비정규적 특사를 활용해 성과를 보았다.

이런 순기능의 예를 우리도 재현할 수 있을까. 이번 대규모 특보단의 구축이 비정규성을 통해 정상적 국정운영을 돕는 모범적 예가 될 수 있을까. 몇 가지 이유로 우려가 앞선다.

첫째, 특보로 거론된 인사들 대부분이 내년 총선 출마를 계획하고 있을 만큼 정치성이 강하다. 국정에 사심 없이 임하기보단 총선용으로 특보 명함을 사용하지 않을지 의심을 살 만하다. 설혹 총선에 구애받지 않더라도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특보의 역할을 함에 있어서 정파성은 걸림돌이 된다.

둘째, 특보단의 규모가 너무 크다. 기존 여러 수준의 조직체계에 추가되어 옥상옥(屋上屋)의 위험성을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정말로 시급한 특정 현안에 대한 효과적 해결사 역할을 하는 데도 많은 수는 방해가 된다. 자칫 특보단 내의 자체적인 조정조차 진통을 겪는다면 되겠는가.

셋째, 특보단의 면모가 대통령 개인의 코드와 너무 일치한다. 대통령 의중의 반영도 중요하지만, 코드 부합이 절대적 비중을 띠게 되면 복잡하고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함에 있어서 활로를 찾기보단 오히려 입장의 경직과 대립의 경색을 가져올 수 있다.

▼제도화된 공조직 우선 활용을 ▼

많은 한계를 안고 있는 특별조직보다는 공조직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특별이라는 수사로 포장해 새 개인조직을 만든다면 제도화는 요원하다. 한국정치는 오랫동안 제도화의 미약 때문에 자의적 운영, 비예측적 불안정을 겪어오지 않았던가. 이제는 비정규성에의 의존을 자제할 때가 되었다. 출범한지 얼마 안 되는 정부가 기존 공조직을 우회하는 비정규성에 벌써부터 의존한다면 앞일이 걱정스럽다.

임성호 경희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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