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폭행피해자 두 번 '폭행'하는 사회

  • 입력 2003년 5월 13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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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상담기관이 비전문적이고 무책임한 일처리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성폭행당한 어린이를 학교에도 안 보내고 생모도 못 만나게 한 채 오랫동안 ‘보호’한 곳이 어떻게 정부의 감독을 받으며 존재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상담소뿐 아니다. 병원에선 성폭행 진단서를 발급하면 번거롭게 수사기관에 출두해야 한다는 이유로 진료를 기피하는 일이 빈번하다. 최근 강지원 전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은 청소년 성폭행사건을 검찰에서 소극적으로 수사하고 있다며 지도감찰을 요구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동과 청소년을 각별히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며 성폭행 피해자에게 또다시 상처를 줌으로써 그들을 이중삼중으로 폭행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성폭력은 가해자가 저지른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취급되기 때문에 더욱 고약한 범죄라 하겠다. 성폭행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피해자에게 경찰과 검찰, 법원 등에 몇 번씩 나가 공개 증언하라는 것은 인권유린과 다름없다.

특히 어린 나이에 상처받은 아동 청소년 피해자들을 배려하기는커녕 그들을 방기하다시피 한 상담기관의 비전문성과 검경의 경직된 수사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선진국들이 피해자 최초진술 때 아동 청소년 전문가를 참여케 하고 그 과정을 녹화한 자료를 법정에까지 활용하는 것도 그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는 성폭행 진료를 기피해 온 병원측의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 우리 경찰에서도 6월부터 이 방법을 시험 실시한다니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동 청소년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우리 아이들의 인권이다. 성을 매개로 한 ‘폭력’의 희생자인 그들이 하루빨리 피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특히 남성중심적 편견을 통해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을 재단하고 수치심을 주는 수사관행 및 재판절차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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