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정찬주/"농부더러 농사 짓지 말라니…"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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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서원 터에 사는 구씨 어른에게 부탁했던 고추 모종을 150모 가져왔다. 한 모에 100원이라니 세상의 생명 있는 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래 절 입구에 설치된 자판기의 커피 한 잔 값도 300원이나 하니 말이다. 흙 묻은 옷에 늘 탈색된 모자를 쓰고 다니는 구씨 노인을 나는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입가에 미소를 달고 논밭에서 묵묵히 일하는 구씨 어른의 태도야말로 내가 소망하는 삶의 구경(究竟)이 아닐까 싶다. 한번도 글을 배운 적이 없지만 수행자나 철학자가 무색할 정도로 순리대로 욕심 없이 곱게 사시는 분이 그이기 때문이다.

점심 후에는 아래 절로 내려가 송광사에서 오신 스님 두 분과 차를 마셨다. 한 분은 출가 이후 줄곧 참선수행만 하신 스님이고, 또 한 분은 손수 차를 덖어 마시는 제다(製茶) 경력이 30여년 된 스님이었다. 나는 솔직히 비싼 차 값에 놀라 차 마시는 일이 호사가 아닌가 하여 회의가 일고 있는 중이었는데 스님의 차 이야기는 오묘했다. 좋은 차 향기로 삼매(三昧)에 든 적이 있다는 참선하는 스님의 맞장구도 차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다. 욕심내어 생산량에 신경쓰게 되면 절대로 좋은 차가 나올 수 없다니 무소유의 지혜가 거기에도 있었다. 자족할 양만 만든다는 스님은 차 보관 방법으로 전기냉장고가 아닌 지난날 냉장고 대용으로 사용했던 스티로폼 박스를 권했다. 열을 차단해주므로 차의 품질을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인 다도(茶道) 고수들이 제다법을 물어왔을 때 “옛어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이라고 했다는 스님의 얘기도 옛길을 버리고 자꾸 새 길로 빨리 가려는 시대인지라 새겨들을 만했다.

오후 4시가 넘어서는 나를 동생처럼 아끼는 황씨에게 찰옥수수 씨를 구하러 갔다. 오랜만에 갔더니 그는 논에 볍씨를 뿌리다 말고 할 얘기가 많은 듯 나를 마루에 앉혀 놓고 일어서지를 않았다.

“옥수수 씨를 한 곳에 두세 개씩 뿌리소. 눈 밝은 꿩이나 산비둘기가 주워 먹으니 그 정도는 뿌려야 나중에 자네도 옥수수 맛을 볼 것이네. 그건 그렇고 자네 휴경지가 뭔지 아는가?”

황씨의 뒷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진짜 농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농부들과 함께 앓는 아픔과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나는 귀농한 사람도 아니고, 생태계 복원을 외치는 환경운동가도 아니다. 그저 산중에 있는 듯 없는 듯 잊혀져 살면서 ‘자연스러운 삶’을 좇아 살고자 하는 그런 사람일 뿐이다.

황씨는 한탄을 했다. 올해부터는 휴경한 논에 대해 얼마의 돈을 정부에서 보상해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황씨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한다. 멀쩡한 논을 휴경한 농부에게 보상금을 줄 게 아니라 비료를 적게 사용하는 농부에게 줄어든 수확량만큼 벌충해주는 식의 보조금 지급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어느 마을 사람은 농사짓기 수월한 마당 앞 논까지 죄다 휴경답으로 신청했다니 땅을 일구어 물려준 조상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농사를 짓지 않게 유도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정책인지 의문이 든다. 황씨는 곶감 빼먹듯이 보상금 받아먹는 재미에 빠져 있다가 몇 년 후에는 정작 농촌의 모든 논들이 병충해 들끓는 황무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옥수수 씨를 받아 산중 처소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도 우울하기만 하다. 처소로 돌아온 뒤 기분 전환도 할 겸 아버지가 저잣거리에서 구해온 깻묵 덩어리를 으깨어 새잎을 피워내느라고 고생한 어린 단감나무와 모란꽃 둘레에 서둘러 묻어준다. 그러면서도 황씨를 살맛나게 해줄 깻묵 덩어리 같은 정책은 없는지 상념에 잠겨 본다. 자칭 지도층 인사들이 농가 사정이야 어찌됐든 정치 개혁이란 과제만 붙들고 속 보이는 말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걱정도 된다. 석양 무렵에 소쩍새의 통절한 울음소리를 듣기는 처음이다.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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