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문학텍스트의 전통과 해체 그리고 변신'

  • 입력 2003년 4월 25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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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텍스트의 전통과 해체 그리고 변신/차봉희 지음/739쪽 3만원 문매미

‘구텐베르크 시대의 종말’이 회자되는 오늘날 문학은 활자문화 시대에 차지했던 문화의 독점적 위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새로운 미디어들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문학텍스트는 이제 수많은 문화생산품 중 하나로서 다른 미디어들과의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그러나 이것은 활자텍스트의 종말이 도래했음을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문학은 끊임없이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N 볼츠는 맥루한이 “도서의 종말이 결코 읽기의 종말과 혼동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음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문자 의존적 휴머니즘의 몰락은 그러나 앞으로 ‘텍스트’가 덜 존재할 것이고 우리가 덜 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그전보다 더 많이 쓰고 읽고 있다. 그리고 독서물의 질도 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상매체가 지배하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문학텍스트의 관찰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한신대 교수·독문학)는 첫째로 텍스트-화상(영상)-미디어의 변화 맥락에서 문학텍스트의 기능 변화에 대해, 둘째로 인문학적 자산으로서의 문예미학적 정보지식들이 문학텍스트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찰과 숙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답한다. 그리고 이런 숙고는 어느 누구보다 인문학자가 더 적절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는 인문학적 문예학에서 미디어미학 내지 미디어문화학으로의 자기변신과 확장일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외국문학 전공자로서 지난 몇 년 동안 시도한 ‘비교문학’ 연구 관련 논문과 ‘문학과 미디어’에 관한 최근의 연구논문을 모은 것이다. 국내 독문학계에는 저자가 70년대 이래 독일 문예학의 첨단 이론들을 지칠 줄 모르는 관심과 열정을 갖고 추적하고 소개해 온 공적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섭렵해 온 이 이론들과 독문학 전공자로서 쌓아온 풍부한 지식들을 한데 녹여 두 방향에서 적용하고 있다. 하나는 90년대 전후의 한국문학에 대해 비전공자로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날카롭게 쏟아내는 통찰들이다. 이것은 한국의 대학에서 학제적 연구는커녕 문학전공 학과들 사이의 협력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국문학자와 외국문학 전공자 모두에게 자극을 주는 고무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변화된 미디어환경에서 인문학적 문예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모색이다. 저자가 최근에 학제적 성격의 ‘미디어문화학회’의 창립을 주도한 것은 이런 인식을 분과학문 내의 이론적 논의에만 묶어두지 않고 사회적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취지의 발로이다. 오늘날 학제적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학문풍토다. 앞으로 점차 나아지겠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라도 인문학적 깊이를 지니면서 현실의 추세를 앞지르는 연구의 결실들이 이 학회에서 많이 거두어지기를 기원한다.

최성만 이화여대 교수·독문학 smchoi@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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