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한미군 '인계철선' 아니라니

  • 입력 2003년 4월 21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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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한미간에 인식차이가 큰 것 같아 불안하다. “주한미군을 인계철선으로 보는 것은 미 2사단 장병들에게는 모욕”이라는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은 양국의 시각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달 전 미 국방부 고위 관리가 “인계철선은 불공정한 말이니 더 이상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미국의 인식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계철선 개념이 주한미군에 대한 모욕이라는 주장은 충격적이다.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억지다. 북한의 전쟁의지를 억지하고 최악의 경우 전쟁이 발발하면 미군이 자동개입해 적을 격퇴한다는 인계철선 개념은 지난 50년간 한미동맹의 근간이 돼왔다. 주한미군의 핵심인 미 2사단이 한강 이북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같은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갑자기 인계철선을 철저히 부인하는 배경이 의심스럽다. 혹시 작년 말 미 언론이 제기한 ‘주한미군 볼모론’이 시발이 돼 미 정부에 인계철선을 포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아닌가. 한국의 촛불시위와 일부 계층의 반미정서, 그리고 한국 집권층의 비우호적 대미 발언 등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아닌가.

미국은 인계철선 역할을 부인하면서 주한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옮겨도 전쟁억지력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여론은 물론 정부 또한 미국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건 총리가 주한미군 재배치 3원칙의 하나로 인계철선 유지를 제시하고, 국방부가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미동맹 정책구상 협의에서 미 2사단의 한강이남 배치에 반대한 이유를 미국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군이 맡아야 할 책임을 영원히 미군에 떠넘길 수는 없다. 지금은 주한미군의 역할 및 주둔지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양국의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미국주도의 일방적 변화는 50년을 유지한 한미동맹관계에 걸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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