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재/'李감독' 영화가 대박일땐…

  • 입력 2003년 4월 18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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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구로공단 야학에 다니던 순수한 젊은이 영호는 여자 친구 순임이 건네준 박하사탕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신참내기 형사가 된 영호는 선배 형사들이 벌이는 잔혹한 고문을 답습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이창동(李滄東) 감독은 시대의 폭력성에 의해 억압되고 굴절되는 인생을 그렸다. 이 감독의 영화에서는 늘 ‘억압’의 코드가 발견된다. 그의 또 다른 영화 ‘오아시스’에는 뇌성마비란 장애에 의해 자기표현을 억압받는 공주와 전과자란 과거 탓에 사회적 억압을 받는 종두의 사랑이 있다.

이 감독은 새 정부 출범 후 문화관광부 장관이 됐다. 영화에서 나타났던 ‘억압’의 코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서도 발견됐다. 노 대통령은 “언론의 시샘과 박해에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며 억압으로부터의 피해 의식을 내비쳤다. 이 장관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관공서 사무실 출입을 제한하는 ‘홍보업무운영방안’을 발표할 때 “언론관에 관해서는 노 대통령의 분신”이라고 말하며 두 사람간 ‘코드의 공유’를 확인했다.

이 장관이 15일 국회에 출석했다. “상위 3개 언론사의 점유율이 75%에 가깝다면 문제가 있으며 시장질서 변화를 위해 공정거래위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질서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점유율을 인위적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며 점유율을 낮추겠다는 것은 쉽게 말해 독자 수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이 장관은 또 마이너 신문들이 시범실시하고 있는 공동배달제를 정부기금으로 지원하겠다면서 그 근거로 “신문은 문화상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같은 문화상품인 영화는 어떨까. “영화 ‘박하사탕’의 관객이 200만명을 넘어 국내 영화시장의 75%쯤 차지했다면 ‘점유율이 너무 높으니 관객 입장을 줄여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을까.”(한양대 박영상·朴永祥 교수)

‘박하사탕’에 관객이 몰린 것은 그가 단지 ‘좋은’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빛나는 진실을, 50일 전만 해도 ‘감독’이었던 그는 벌써 잊은 걸까.

이 ‘감독’은 ‘박하사탕’을 내놓으며 말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원래의 소중함을 상실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일깨우고 싶다”고. ‘시대의 폭력성’이 강요했던 부조리 속에서 ‘원래의 소중함’을 잃지 않으려 했던 기억이 그에겐 지금도 남아 있을까. 아니면 ‘권력의 폭력성’에 그도 물들고 있을까.

‘박하사탕’의 명대사는 진실을 말해 주고 있는지 모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이승재 문화부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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