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택/‘韓美 대등외교’가 남긴것

  • 입력 2003년 3월 31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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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 파병 결정은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따져봤더니 남는 장사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다. 한번도 미국이 큰 나라이기 때문에 말을 안 들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까) 하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취임 후 처음 미국을 방문한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워싱턴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라크전 파병 결정의 핵심 요소는 한마디로 ‘국익’이었다고 설명했다.

윤 장관은 방미 성과로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출범으로 한미동맹 관계에 의구심을 가져온 미 의회와 행정부가 동맹 관계가 과거처럼 지속될 것임을 확인하고 안도하게 된 점을 꼽았다. 그는 의회와 행정부 인사들이 ‘그래 동맹은 동맹이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측 분위기가 바뀐 결정적 계기는 아무래도 한국 정부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라크전 파병 결정을 해줬기 때문인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민족의 목표 달성을 위해 내린 결정인 만큼 한미간 ‘대등외교’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파병 결정이 대등외교와는 무관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서 시작된 한미관계 위기를 돌이켜보면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현 정부가 주장해온 ‘한미관계 균형 재조정’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울러 대등외교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역대 한국 정부는 국익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궁금하다.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인 2월 초 한미동맹 관계의 중요성을 미국 조야에 알리겠다며 미국을 방문한 특사단은 균형 재조정 문제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에게 거론했다.

그러나 결과는 미국측의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라는 역풍을 맞아 불안한 한미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역효과만 초래했지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고건(高建) 국무총리까지 수습에 나서 주한미군이 계속 전방에 주둔하며 인계철선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사실상 이를 거부한 상태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현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며 미국 정부의 다자틀 속에서의 대화에 이견이 있다는 인상을 줘 왔지만 최근에는 미국측 입장에 동조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한미관계는 윤 장관의 말대로 ‘동맹은 동맹’이라는 관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한미관계를 불안하게 만든 발언과 주장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권순택 워싱턴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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