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만약에…"…과거의 주요 전쟁 뒤집어 재구성

  • 입력 2003년 3월 28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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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군사역사편/스티븐 앰브로스 외 지음 이종인 옮김

508쪽 1만6000원 세종연구원

대체역사(代替歷史)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중요한 사건의 결말이 실재(實在)의 역사와 다르게 났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그 뒤의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다. 대체역사가 실재역사와 그렇게 갈리는 사건은 분기점(branching point)이라 불린다. ‘만약에’ 첫 권은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전쟁이나 전투의 분기점을 찾아 쓴 대체역사 20개를 모아놓은 책이다. 그것들 가운데엔 16세기의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 함대의 해전, 18세기의 미국독립전쟁, 19세기의 나폴레옹전쟁과 미국 남북전쟁, 그리고 20세기의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대체역사의 단골 주제들이 들어있다.

대체역사는 지적 자양이 많다. 재미있으면서도 너른 분야들에 관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다. ‘만약에’처럼 좋은 필자들에 의해 쓰여진 경우엔 특히 그렇다. 20명의 필자들은 모두 평판이 높은데,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함대와 그리스 함대가 싸웠던 살라미스해전을 다룬 빅터 데이비스 핸슨과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전략적 결정을 다룬 존 키건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이 책의 편집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런 종류의 대체역사는 이미 오래 전에 선구적 업적들이 나왔다. 특히 중요한 글은 저명한 영국 역사학자 조지 매콜리 트리벨리언(1876∼1962)이 1907년에 발표한 논문 ‘만일 나폴레옹이 워털루 싸움에서 이겼다면’이다. 그리고 역사학의 방법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그 논문은 영국 문필가 아이적 디즈레일리(1766∼1848)가 1800년경에 발표한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의 역사에 관하여’에 큰 빚을 졌다.

대체역사는 역사와 문학을 아우르는 분야다. 역사학자들은 대조실험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어떤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과 인과관계를 가늠하는 일에서 대체역사 기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사정을 의식적으로 밀고 나가면, 이 책에 실린 글들과 같은 대체역사가 나온다. 문학에선 대체역사는 과학소설의 중요한 하위 장르가 되었다. 이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작품 여럿이 이미 번역되었다.

그러나 정작 흥미롭고 중요한 점은 사람은 누구나 늘 대체역사를 마음 속에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날들을 돌아보면서, ‘만약 내가 그때…’와 같은 생각을 하고, 그런 가정에 따라 그 뒤에 나왔을 우리의 삶과 현재의 모습을 그려본다. ‘만약 내가 그때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 나는 지금…’은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자주 떠올리는 생각일 터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대체역사다. 비록 누구도 그것에 대체역사라는 이름을 붙이진 않지만, 그런 가정에 바탕을 둔 성찰은 언뜻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자신들의 삶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은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역사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고 유익한 지적 자양을 얻을 수 있다. 굳이 아쉬운 점을 들자면, 서양 역사학자들이 쓴 글들이라 동양 역사에 관한 글이 중국의 국공내전을 다룬 글 단 한 편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분발하여 동양의 중요한 전쟁과 전투를 다룬 좋은 대체역사들이 쓰여지기를 기대해 본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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