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택정책 질 위주로 전환할 때

  • 입력 2003년 3월 23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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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구 중 1가구가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살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양적 팽창에 매달려온 주택정책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매년 50만 채 가까운 주택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 이면(裏面)에 화장실이나 부엌조차 없는 집에 사는 사람이 74만 가구를 넘는다고 한다. 열악한 주택이 이렇게 많은 상태에서 ‘주택보급률 100% 달성’은 허울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거의 질을 외면한 물량 위주의 주택공급 정책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정부정책은 주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주기적으로 값이 폭등했고 서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 결과 정부 통계대로라면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이제 100%를 넘어섰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가구가 1채 이상의 집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물량 확대에만 매달려온 주택정책의 혜택이 집다운 집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에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 온 가족이 사는 집을 주택보급률에 포함하는 것은 숫자놀음일 뿐이다. 실제로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01년 집행된 국민주택기금 가운데 저소득 서민을 위해 사용된 돈은 43%에 불과했다.

다행히 정부는 최근 이 문제를 인식하고 최저주거환경기준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기존 주택건설촉진법을 보완해 주거환경의 질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은 작년 7월 입법예고된 뒤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정치권의 입법 의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현 정부는 집권 5년 동안 과거 정부와 비슷한 수준인 매년 50만채씩 총 250만채의 주택을 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은 주택 건설 못지않게 주거환경을 사람 사는 곳답게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소득 1만달러 시대라면 국민이 그에 걸맞은 수준의 주거환경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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