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인사청문 쇼

  • 입력 2003년 3월 19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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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3시경 최기문(崔圻文) 경찰청장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장. 21명의 의원들은 TV생중계가 끝나는 오후 4시를 의식한 듯 자신에게 주어진 질의응답시간 10분을 ‘정확히’ 지켜가며 다음 차례 의원에게 ‘부랴부랴’ 마이크를 넘겼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질의공세만 펼칠 뿐 최 후보자에겐 답변시간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깊이 있는 질의와 답변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법까지 만들어 가며 시행한 ‘빅4’의 첫 인사청문회는 결국 여야 의원들의 ‘TV 출연잔치’로 끝났다. 이날 청문회는 오전 오후 각각 2시간씩 TV로 생중계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질의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보다는 TV생중계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되는지에 더 관심을 보였다.

21명의 의원이 4시간 동안 중계되는 TV에 얼굴을 모두 비추기 위해 ‘10분’의 시간을 반드시 지킨 것일까. 여느 때 같으면 주어진 시간을 넘겨 마이크가 꺼질 때까지 질문공세를 펴던 의원들이 이날만은 유독 시간을 ‘엄수’했다. 21번째 마지막 의원의 질의시간 종료와 함께 TV생중계도 끝이 났다.

잠시 휴식을 갖고 TV카메라 없이 다시 시작된 청문회. 첫 마이크를 잡은 정창화(鄭昌和) 의원은 “방송 때문에 질문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오순도순 해 보자”라며 말문을 연 뒤 제한시간 10분을 넘겨가며 같은 질의를 반복했다.

하긴 ‘속빈 강정-그들만의 TV잔치’는 이미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문회가 열리기 이틀 전 한나라당의 한 의원 보좌관은 “장관도 아니고 차관급 인사에 대한 청문회라 의원들의 관심이 덜하다. 괜히 빅4에 대한 청문회를 한다고 해서 일만 만들어놨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19일 공식 브리핑에서 “이번 청문회는 심도 있는 청문회가 안됐다. 방송시간을 맞추느라 주어진 10분을 후보자의 답변을 듣기보다는 의원들의 질문으로 모두 사용했다”고 말했다. 극히 이례적인 고백이었다.

앞으로 국세청장, 검찰청장,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남아 있다. 의원들의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민혁기자 정치부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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