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환경이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 입력 2003년 3월 14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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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이스터섬에 살던 주민들은 인구가 7000명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수목 먹을거리 등 자원이 고갈되자 부족간 싸움으로 멸망해 버렸다. 이스터섬에 남겨진 거대한 석상은 환경사가 경고하는 지구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6세기 중반 이스터섬에 살던 주민들은 인구가 7000명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수목 먹을거리 등 자원이 고갈되자 부족간 싸움으로 멸망해 버렸다. 이스터섬에 남겨진 거대한 석상은 환경사가 경고하는 지구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이시 히로유키 등 지음 이하준 옮김 /286쪽 9800원 경당

20만년 전 모습을 드러낸 현대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신인·新人)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직 인류학의 미스터리다. 호모 사피엔스의 선조로 알려졌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원인·猿人) 네안데르탈인(구인·舊人) 등은 DNA 분석법의 발달에 따라 현 인류와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5만년과 7만년에 걸친 한랭기에 무서운 속도로 유럽과 아시아에 퍼져나갔고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에까지 이르렀다. 3만3000년 전 무렵 한랭기를 맞아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는 가운데에도 호모 사피엔스는 구석기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호모 사피엔스는 1만4000년 전 50년새 지구 평균온도가 7∼8도나 변하는 극심한 기후 변화 속에 절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침엽수가 모두 사라지고 생태계가 미처 적응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류는 최소 40명에서 1만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와 같이 인류는 문명의 시작단계부터 환경의 지배를 받아왔다. 지구의 기후가 장구한 세월 동안 천천히 변한 게 아니라 특정 시기에 급격하게 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환경’이 인류의 역사를 좌우했다는 시각, 즉 ‘환경사’가 1980년대에 대두했다.

환경사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교과서 이론을

뒤집는 다양한 시각을 전해준다.

흔히 4대 문명으로 일컫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허 문명이 인류 문명의 기원이라는 통설은 환경사적 시각에서 다시 해석되고 있다. 이들 문명 이전에 양쯔강 유역에는 농경민 계열의 장강 문명, 인더스 문명의 중심지로 알려진 하라파의 훨씬 남쪽엔 바라탈 문명이 있었다. 5700년 전과 4000년 전 지구의 극심한 한랭 건조화가 유목민들의 대규모 이동을 불러와 양쯔강과 바라탈의 고대 문명을 멸망시켰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문명이 점차 발전할수록, 자연적인 기후의 변화보다는 인간의 자연파괴가 불러온 기후 또는 환경의 변화가 부메랑처럼 인류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간 페스트의 번성은 그 한 예. 13세기까지 온난했던 기후 속에서 인간은 삼림을 대규모로 파괴하면서 농지를 개간했다. 그러나 14세기 한랭화가 시작되면서 농업생산이 뚝 떨어졌다. 이 같은 한랭화는 더욱 삼림 파괴를 가속화했고, 삼림이 사라지면서 페스트를 옮기는 ‘큰 쥐’의 서식지역이 크게 늘어나자

페스트가 번성

했다는

것.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유럽의 중세 문명은 종말을 고한다.

유럽이 16세기 무렵 신대륙 발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도 삼림 파괴와 관련이 깊다. 15세기 페스트 및 인구 감소의 여파로 유럽의 삼림자원이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듯했지만, 다시 파괴가 반복돼 자원이 부족해지자 신대륙 발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과거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위해 환경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대규모 환경파괴를 자행해 왔지만, 이는 언젠가 부메랑이 돼 인류에게 돌아오고 이는 인류 절멸의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로 읽혀진다.

이 책은 이시 히로유키(도쿄대학원 교수·환경학) 야스다 요시노리(국제일본문화센터 교수·환경고고학) 유아사 다케오(도키와대 교수·비교문명사) 등 세 일본인 환경학자의 방담으로 꾸며졌다. 대담 형식이다 보니 학문적 엄정함에서 엄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일본의 지역적 시각이 자주 드러나긴 하지만, 대화체로 쉽게 풀어나가 독자의 이해도를 높인 것은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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