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치 형사부장 “수긍못할 人事땐 정년까지 남아 저항”

  • 입력 2003년 3월 10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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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는 눈이 조금 내리고 바람이 약간 불어도 없어지는 눈 위의 기러기 발자국 같은 것. 마음의 사표는 썼지만 수긍할 수 없는 인물이 검찰총장이나 고위 간부가 된다면 결연히 저항할 것이고 정년까지 남는 치욕을 선택하겠다.”

검찰 인사파동이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진 상황에서 현직 검사장이 내부통신망에 새 정부의 검찰인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

김원치(金源治·사시 13회·사진) 대검 형사부장은 10일 ‘검찰인사 개혁의 정체성에 관하여’라는 글을 올리고 “합리적인 원칙 없이 서열과 기수를 무시한 인사가 이뤄진다면 검사의 신분보장이 형해화되고 정치권 예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검사장은 80, 90년대 공안 수사를 맡은 공안통이지만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아 금도를 지킨 학구파 검사로 통한다. 그는 지난해 “무사는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이명재(李明載) 총장의 연설문 원고를 작성했으며 언론과 통신망에 검찰 현안에 관한 글을 자주 게재하기도 했다.

통신망에 올린 글이 ‘미리 써놓은 사퇴서’라고 말한 그는 “28년간 검사 생활을 돌이켜보건대 나 자신을 개혁 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정치권력에 줄을 대거나 빌붙어 구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정치검사’를 양성한 1차적 책임은 우리 검찰에 있지만 그런 속물적 형태의 동기와 원인을 제공한 책임은 정치권력에 있다”며 정치권을 겨냥했다.

최근 진행되는 검찰인사에 대해 “기수가 앞에 있건, 뒤에 있건 있어야 할 사람이 남아있고 떠나야 할 사람이 떠나야 한다”며 합리적 기준이나 절차적인 정당성이 없는 인사에 저항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파격인사가 오히려 검찰을 정치권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의 글이 통신망에 올려지자 ‘낙락장송이 기울면 우리 같은 못다 핀 꽃들은 어찌합니까’ 등 그의 퇴임을 만류하거나 그의 입장을 지지하는 글들이 잇따랐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신세인 대검 검사장들 중에도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김학재(金鶴在) 대검 차장과 유창종(柳昌宗) 서울지검장은 개혁을 빌미로 남아 있는 검찰 간부에게 모욕을 준다면 차라리 옷을 벗고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盧대통령-평검사 대화 ‘홍일점’ 李玉 검사▼

“검사들이 소신을 지키면서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검찰 인사를 해 달라는 것이 평검사들의 바람입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평검사간의 대화에서 유일한 여성 검사로 참석해 눈길을 끈 이옥(李玉·서울지검 조사부·사시31·사진) 검사는 10일에도 서울지검 평검사들의 의견을 모으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평검사회의 대변인을 맡아 성명서 발표 등을 주도한 이 검사는 9일 열린 토론회에서는 발언 기회를 선후배 검사들에게 넘기며 말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대신 이 검사는 토론회 분위기가 격앙된 쪽으로 흐르자 노 대통령에게 “검사들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느냐”며 “검찰도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 달라”며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서울지검의 한 평검사는 “평검사들을 대표해 대 언론 창구역을 적절히 수행했다”며 “토론회에서도 특유의 여성스러움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이 검사는 후배들로부터 ‘스마일’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업무량이 많아 여 검사들이 잘 가지 않는 조사부를 자원했을 정도로 일 욕심이 많고 당찬 여성.

전남 고흥 출신인 이 검사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서울지검 북부지청을 거쳐 법무부 여성정책 담당관을 지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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