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진홍/이중국적 이중잣대

  • 입력 2003년 3월 9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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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나라들은 한결같이 이중국적을 허용했다. 식민지들이 독립한 후에도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가 하면 대만은 화교를 보호하기 위해, 멕시코는 미국에 거주하는 자국민의 실익을 위해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의 경제력을 활용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용인하고 있다. 이처럼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47개국쯤 된다.

▷우리나라는 이중국적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속지주의가 인정되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상사 주재원으로 있으면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중국적을 취득한 것 자체가 시비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문제는 이중국적이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은 누리면서 결정적인 시기에 의무는 피하는 이른바 ‘얌체짓’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병역이다. 18세 이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한 남자의 경우 미국과 한국 국적을 함께 갖고 있다가 만 18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자연히 군에 갈 의무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중국적자들은 정기적으로 주한 대사관으로부터 전쟁시 대피요령을 담은 우편물을 받는다고 한다. 전쟁 상황에서도 우선적으로 신변안전을 보장받는다는 이야기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대학에 진학할 경우 입학은 물론 학자금 대출, 등록금, 장학금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거꾸로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남들보다 쉽게 한국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 이러니 수천만원이 소요되는 ‘원정출산’을 해서라도 자녀에게 이중국적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개각 때마다 ‘이중국적’ 시비는 단골메뉴가 되었다. YS정권 때는 첫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박희태 현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이 딸의 이중국적 문제로 1주일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DJ정권에서도 송자 교육부총리, 장상 총리후보자 등이 이중국적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자리를 물러나거나 청문회에서의 인준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새 정부의 첫 조각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도마에 올랐다. 아들의 한국국적 포기에 따른 병역기피 의혹과 십 수년 동안 가족이 한국에 살면서도 서류상으로는 외국에 체류한 것처럼 되어 있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청와대는 숙고(?) 끝에 진 장관을 감쌌다. ‘이중국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중잣대’임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진홍 객원 논설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atombit@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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