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조인길/쿠바 상대로 독점사업 해봤더니…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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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전쟁의 소문으로 시끄럽다. 그 중심에 있는 나라는 물론 이라크와 북한이다. 서울도 덩달아 위험 지역 1순위에 올랐다. 그러나 며칠 전 서울에 가 보니 사람들은 의외로 태평스러웠다. 대신 대북 송금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그 과정에 현대가 끼어들어 심부름을 하면서 북한으로부터는 여러 사업권을, 남한으로부터는 다양한 혜택을 보장받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필자는 현대가 북한으로부터 받았다는 ‘독점사업권’이 애물단지가 될 것 같아 걱정이다.

필자는 99년부터 2년간 ‘네네카’라는 남미 회사에서 일하며 북한과 흡사한 나라인 쿠바에서 현대가 받은 것과 비슷한 약속을 받아본 적이 있다. 30년간 해산물을 독점 채취해 가공하는 권리를 부여받았고 50년간 양식장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을 받아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겉으로는 거창했지만 실속이 없었다. 사업은 오히려 ‘돈 먹는 하마’로 둔갑했다. ‘한 국가와 맺은 계약이 그럴 수 있을까’ 하고 의아스러워 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사업이란 흑자를 내야 한다. 그리고 새 사업에 투자했을 때는 일단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들어간 돈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런데 쿠바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는 기업이 흑자를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인 인적자원과 제도와 인프라가 없었다. “몇 년 투자하는 셈치고 인력을 훈련시키겠다”고 각오를 할 수도 있다. 특히 현대처럼 큰 회사에서는. 그렇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사람을 훈련시키거나, 동기를 유발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하므로 받는 임금이나 혜택이 같은데, 누가 남보다 두 배, 세 배 더 열심히 일하겠는가.

사업에 필요한 인프라도 전혀 없었다. 길은 엉망이고 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나가며, 전화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발전기를 돌리려 해도 기름이 없고, 길을 고칠 장비가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쿠바는 외국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나라였다. 설령 그런 것이 있다 해도 당이 먼저고 보안이 우선이므로 없는 걸로 생각하지 않으면 엉뚱한 데서 낭패를 본다.

쿠바에서 외국인 사업가들을 더 기막히게 하는 것은 부대 비용이다. 투자금을 뽑을 일이 까마득한데도 아파트 학교 탁아소 병원 등 후생복지시설을 갖추라고 요구한다. “그런 건 돈이 좀 돌면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사회주의 혁명은 모두에게 기본적인 생활권을 보장했으므로 너희도 여기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지금은 사정이 어렵지 않느냐. 벌써 들어간 돈만 해도 상당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돈만 벌면 다 해 주겠다”고 설득하면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돈도 없는 놈들이 왜 왔느냐, 너희는 원하면 돈을 끌어 올 수 있다.”

필자는 요즘 미국 테네시주에 있는 일회용 의료기기제작사 드로얄사에서 일하면서 1년에 200일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등지에 출장을 다닌다. 외국에서 여러 가지 북한 소식을 접하면 늘 쿠바를 떠올린다. 필자가 겪은 쿠바는 더 이상 체 게바라의 꿈과 이상이 살아 있는 섬이 아니었고 노동자의 천국도 아니었다. 달러를 벌기 위해 의사가 호텔 웨이터를 하고 필자 같은 외국인 사업가들은 쥐어짜면 뭔가가 나오는 ‘봉’으로만 생각하는 ‘상식 밖’의 나라였다.

조인길 미국 드로얄사 아시아 부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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