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상혁/힘든 의료부문 지원 넓히라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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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온 국민의 주식이므로 전국의 모든 슈퍼마켓은 원가 15만원인 쌀 한 가마를 10만원에 판매하고 반찬거리인 고등어통조림을 팔아서 슈퍼마켓의 경영수지를 맞춰라”고 법으로 정해 놓는다면 슈퍼마켓 주인들이 가만히 있을까?”

총칼을 들이대고 하라면 당장은 하겠지만 언젠가는 슬금슬금 눈치를 봐가며 판매 행태를 바꿀 것이 분명하다. 가능한 한 ‘쌀은 없다’고 하면서 안 팔려고 할 것이다. 반면 고등어통조림은 전 세계 브랜드를 다 갖다 놓고 어떤 제품이 몸에 좋은 ‘오메가 3’가 가장 많이 들어 있다는 등 마케팅 문구도 커다랗게 써놓을 것이다. 만일 지금과 같은 의료시스템이 앞으로도 존속한다면 우리나라 미래의 의료는 이 가상시나리오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상적은 분야 인력부족 심각▼

최근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등의 의사 인력이 크게 부족해지자 병원들이 암묵적으로 무면허 의료시술자(일명 오다리)까지 수술에 가담시키는 등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실상이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료계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돈에 눈이 멀어서일까.

정답은 바로 1977년 도입 이래 저보험료, 저수가, 저급여 형태로 추진돼온 건강보험정책에 있다. 건강보험정책이 의료체계의 왜곡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래 보건의료정책을 분석해 보면 누구나 대부분의 문제가 적정급여와 적정수가로 귀결된다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보건의료정책은 이 핵심사항을 외면한 채 미봉적인 방법으로 근근이 위기를 모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출생시 문제가 있는 신생아들이 산소호흡기와 여러 첨단장비가 붙어있는 인큐베이터에 바로 들어가지 못해 장애를 갖게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이는 해당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이 건강보험수가상 원가 이하로 책정돼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이런 기기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수가의 왜곡으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의료수급체계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99년 11월15일 건강보험수가 개정 과정에서 진단방사선 수가체계는 촬영료와 판독료를 통합한 단일수가체계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판독할 경우 일반의사가 판독할 경우에 비해 소정 수가의 10%만을 가산해 산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진단방사선과 전문의의 부가적 수익 창출은 방사선 촬영의 10%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방사선 촬영 건수가 그리 많지 않은 소규모 종합병원에서는 방사선과 전문의를 대부분 해고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수가 개정 전까지 성적이 매우 우수한 의대 졸업생들이 지원했던 진단방사선과는 현재 전공의 정원의 50%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대한방사선학회 내부자료에 따르면 현재 진단방사선과 전문의 실업률이 20%에 이르고 있다.

이뿐인가.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될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일반외과는 그 뒤 외과계 건강보험수가가 낮게 책정되면서 이미 10여년 이상 전공의 정원미달 상태로 지내왔다. 그 결과 지금은 외과계를 지원하는 우수인력이 거의 없어 “조만간 외과수술을 받으려면 해외로 가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가 조정해 의사편중 막아야▼

이처럼 건강보험수가는 매우 강력한 의료정책 수단이다. 의사들은 해당 의료행위가 적정수가 이하의 경우면 그러한 의료행위를 안 하려고 할 것이고 해당 의료행위가 적정수가 이상이면 그러한 의료행위의 빈도를 늘리려고 할 것이다. 마치 앞에서 예로 든 슈퍼마켓의 쌀과 고등어통조림의 이야기처럼 될 것이다.

의료행위의 빈도는 건강보험의 수가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왜곡된 현상을 바로잡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보험수가의 적정한 재책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상혁 이화여대 의대 교수·예방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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