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18>문화인프라

  • 입력 2003년 2월 4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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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주위에서 가장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문화시설은 어떤 것일까. 적어도 서울에서는 백화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백화점의 문화공간화’는 문화의 구실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현상은 일상적으로 찾아갈 수 있는 훌륭한 공공문화시설이 크게 모자라는 한국 사회의 반문화적 상황을 역설적으로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문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외침은 요란하지만 정작 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기반은 턱없이 부실하다. 문화기반은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를 계발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문화적 불평등’의 심화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기초자원이다.

문화기반을 크게 물리적, 내용적, 제도적, 인적 기반의 4가지로 나누었을 때 우리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물리적 기반과 인적 기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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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문화기반은 시민들이 쉽게 찾아가서 각종 문화산물을 즐기고 배우며 ‘일상의 문화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자리잡아야 한다. 선진국의 대도시들을 보면 도심에 그 나라를 대표하는 각종 문화시설들이 자리잡고 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도쿄의 우에노 미술관 등이 그렇다. 이들 시설은 한결같이 시민들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쉽게 찾아가 보고 즐기고 배울 수 있게 돼 있다.

우리의 도심은 어떤가. 서울만 봐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도서관, 예술의 전당 등은 서울 외곽 아니면 교통 근접이 어려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자리잡은 서울의 세종로도 과연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지하도로 건너 다녀야 하고 보도에는 언제나 전경들이 오가며 감시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확 바꿔야 한다. 세종로에 건널목을 설치해 누구나 편하게 건너 다니게 하자. 길가의 차로를 좁히고 가운데의 녹지분리대를 넓히자. 길 양쪽에 이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시설들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자. 이렇게 해서 세종로를 복원된 경복궁과 어우러져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지구로 다시 태어나게 하자. 만일 새 정부에서 행정수도 이전이 결정된다면 정부청사와 외교공관이 몰려 있어 정치의 중심공간이었던 세종로는 문화공간으로 더 쉽게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로 부실한 인적 문화기반을 들 수 있다. 사실 단순히 양적인 면으로 보자면 한국의 물리적 문화기반은 크게 늘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생활문화시설’이 많이 확충됐다. 그 좋은 예로 ‘문화의 집’을 들 수 있다. 1996년 10월 서울에서 문을 연 ‘문화의 집’은 2001년 12월 현재 전국 84개소로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해선 이미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 기능이나 프로그램이 전국 212개소에 자리잡고 있는 ‘지방문화원’이나 1999년부터 278개 동에 설치되고 있는 ‘주민자치센터’ 등의 유사기구와 겹친다.

정말로 중요한 점은 이런 ‘생활문화시설’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문화적으로 좀더 풍부해졌다고 느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첫째는 ‘문화시설’이 들어서면 자동적으로 ‘문화활동’이 풍부해질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문화시설’의 운영을 단순한 행정업무쯤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물리적 문화기반이 제구실을 하도록 하려면 전문적 문화인력이 문화시설의 기획부터 운영까지 책임지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이론가, 문화기획자, 문화산업가, 전문기술인력, 큐레이터 등의 인력이 적절히 배치돼야 ‘문화시설’은 비로소 살아서 꿈틀거릴 수 있다. 이제는 ‘시설 중심’에서 ‘인력 중심’으로 문화정책의 축을 바꿔야 한다.

든든한 문화기반 위에서 신나는 문화사회가 자라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문화를 단순히 삶의 여분으로 여기는 문화관부터 바꿔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리적, 인적 문화기반을 새롭게 확충해야 한다. 새 정부 문화정책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

▼도서관, 열린공간으로▼

시장 한복판에 공공도서관이 있다. 주부들은 장을 보러 왔다가 도서관에 들러서 책은 물론 동영상물과 그림 작품까지 빌려간다. 각종 공연과 문화행사에 대한 정보도 챙긴다. 아기는 도서관 내 유아 전문 사서에게 맡기면 된다. 0∼3세 반과 3∼6세 반으로 나뉜 유아반에서는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읽어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입으로 빨거나 손으로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도록 천으로 만든 책들이 놓여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도서관 살리기 국민연대’의 한상완(韓相完·연세대 문헌정보학 교수) 대표가 영국 옥스퍼드시에서 체험한 얘기다. 선진국에선 이처럼 도서관이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장(물질)과 도서관(정신)이 일상(日常)에서 만나는 공존의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도서관은 닫힌 공간이다. 수험생과 고시생을 위한 독서실이 주된 기능 중의 하나다. 위치도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도서관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0분 이상 걸어야 한다. 남산도서관도 산꼭대기에 있다. 도심 속에서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도서관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는 서울과 세계 주요도시의 공공도서관 및 백화점 수를 비교해 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서울시내 공공도서관 수는 42개로 도쿄 217개, 뉴욕 213개, 런던 386개와 비교해 5분의 1도 안 된다. 반면 서울의 백화점 수(27개)는 도쿄(28개), 뉴욕(10개), 런던(9개)에 비해 최고 3배나 많다. 이 같은 수치들은 백화점 문화센터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의 문화 인프라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서관은 지식·정보산업시대를 살아갈 어린이들에게 정보를 찾고 분석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체험 교육의 현장이다. 또한 베스트셀러로 왜곡된 국내 출판시장을 양서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 교두보이기도 하다. 백화점 문화센터가 문화 인프라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文官복합시설 만들자▼

미술관은 동물원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어야 한다. 음악당과 도서관도 법원보다 가까이 있어야 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국 각지에 문화예술회관들이 건립돼 왔다. 현상설계공모를 거치고 예산도 적지 않게 책정돼 시설물로서의 수준은 낮다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도심의 높은 땅값 때문에 이들이 ‘첩첩산중’에 세워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민들 가까이에 문화시설이 세워져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대한 대안이 문관(文官)복합시설이다. 동사무소, 경찰서, 소방서와 같은 행정관청들은 땅값이 오르기 전에 도심의 요지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 전에 세워진 만큼 자리는 좋으나 노후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들을 신축할 때 문화시설과 합쳐서 짓는다면 도심 속 문화시설에 대한 욕구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도서관과 경찰서를 같이 지을 수 있다. 도서관은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이다. 경찰서는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더 친근하고 열린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다. 청소년들은 경찰서에 딸린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다. 경찰서가 시민에게 가까운 만큼 도서관도 가까워지는 것이다. 도서관을 새로 지을 예산으로 초등학교 도서관을 대폭 확충해 공공도서관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할 수도 있다. 미술관과 소방서가 같은 건물에 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조직과 예산체계가 다른 공공시설이 같은 건물에 공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주상복합시설에는 이해관계가 다른 수백명의 주민이 또 다른 수백명의 상인과 어울려 산다.

문관복합시설을 위해 단 두 개의 행정조직이 의견을 조율할 수 없다면 공공기관의 탄력성은 민간기관의 수백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백하는 꼴이 될 것이다. 행정기관은 달라도 그 예산은 모두 한 곳,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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