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제임스 메트레이/부시 강경책이 전쟁 위기…

  • 입력 2003년 1월 29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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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동안의 사건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동지역에 임박한 전쟁뿐 아니라 한반도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두 갈등은 헤게모니를 고수하고 이에 대항하는 이들을 파멸시키려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

한반도의 현 위기는 2002년 미국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선언한 뒤부터 시작됐다. 이 발언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기 몇 주 전에 나온 것. 바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북 화해정책이 아닌 대립정책을 강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압박 통해 적대정권 교체 꾀해▼

이 밖에도 부시 행정부는 다른 이유들을 갖고 있었다. 첫째,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분류하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 아래 이슬람권과 대립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평양이 얼마나 위험한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지 강조하면 의회로부터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위한 재정 지원을 받아낼 수 있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셋째, 부시 대통령이 압박과 고립정책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켜 버려야 한다는 강경론자들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클린턴 행정부와는 상반된다. 부시 행정부의 우선적 외교과제는 바로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모두 다 바꾸는 것이었다. ‘강경 포용정책(hawk engagement)’이라 불리는 이 정책은 북한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

이 정책은 겉으로는 북한과의 협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들을 강요하고, 북한이 이를 거절할 경우 북한의 비합리적이고 적대적인 경직성을 비난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 끝에 이끌어낸 1994년 제네바 기본협약의 이행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지난 2년 동안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외교정책이 현 위기상황으로까지 이어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공격 방침을 천명한 이후 북한의 지도자들과 국민은 자연히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이 다음 대상이 될 것이라는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여름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에 대한 선제공격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자 이 같은 우려는 더욱 견고해졌다. 2002년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바로 전쟁 억제를 위한 조치(act of deterrence)였다고 본다.

부시 행정부는 자극적인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지난해 11월 미국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지원키로 했던 중유 공급을 중단키로 했다고 선언하고, 북한이 핵 프로그램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북한은 12월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들을 추방해 미국을 놀라게 했다. 북한은 이어 휴전선 근방 병력을 재배치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놀라운 점은 북한이 (미국이) 불가침조약에 서명하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오히려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중단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세계는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 두려움과 함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어떤 측면에서는 평양의 ‘핵 외교’를 조장했다고 본다.

▼한국의 반미정서 자극 말아야▼

미 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세계가 북한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도록 유도하면서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적대적 대북정책은 오히려 한국을 자극했다. 결국 미국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위해서 북한과 협상할 의향이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공식적인 서면 안전보장을 할 수 있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불행히도 그 어떤 해법도 이미 상처받은 한미 관계를 복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반미감정은 한국 내에서 전례 없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의 입장을 제대로 존중하고 수용해 오지 못했던 미국의 불찰 때문이다. 북한이 핵 공격을 전개할 가능성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대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우 희박하다.

한국민들이 부시 행정부에 대해 한반도에서 자극적이고 호전적인 정책을 멈추기를 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제임스 메트레이 캘리포니아 치코 칼스테이트대 역사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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