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3대의혹'털고 출발하라

  • 입력 2003년 1월 19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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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정치력 회복이 시급하다.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선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 민주 양당 모두 개혁을 둘러싼 갈등으로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 북핵 문제, 인수위법 등 시급한 정치 현안들이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특히 새 정부 출범에 반드시 필요한 인수위법은 현 정권의 비리의혹 조사와 연계돼 기한 내 통과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 야당에 먼저 손내민 盧당선자

이렇게 정국이 꼬인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최근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야당 대표에게 회동을 먼저 제의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여야 총무들과 3자 회동을 갖기도 했다. 의전과 격을 중시하는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이러한 노 당선자의 파격적인 정치행보는 그 저의를 떠나 국민에게 신선하게 비치고 있다. 노 당선자로서는 정부 출범 이전에 거대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국무총리 등 새 정부의 요직 인사가 야당의 협력 없이는 어렵다는 절박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 당선자의 파격행보를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

현 정부와 새 정부는 소수파 정권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처지가 같다. 소수파 정권은 원내 다수당의 협조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는 바로 이 사실을 무시했기 때문에 많은 무리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노 당선자가 스스로를 낮춰 여야 총무와 회동한 것은 국회를 중시하겠다는 증표로서 환영할 만하다. 특히 이 자리에서 당선자가 앞으로 모든 정국 현안을 원내로 수렴해 여야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화 의지가 현재의 교착된 정국을 푸는 데서부터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화와 타협은 한쪽만의 노력으로 성사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노 당선자의 제의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도 중요하다. 현재 한나라당은 인수위법 통과와 현 정부의 의혹사건 규명을 연계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온당치 못하다. 전혀 별개인 두 건을 연결시켜 차기 정부의 순조로운 출범을 가로막는 것은 명분 없는 짓이며 공연한 발목잡기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인수위법은 시한 내에 여야합의로 통과되어야 한다.

대신 노 당선자와 민주당은 의혹사건 규명에 관한 한나라당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7대 의혹을 제기하며 그중 특히 4000억원 대북지원설과 국정원 도청설, 공적자금 비리 등 세 가지에 대해 국정조사와 특검제를 통한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병풍, 세풍 등을 추가시켜 9대 의혹을 모두 조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의혹이 있는 모든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없다면 중요성이 큰 것부터 규명하는 게 상식이다. 현시점에서 4000억원 대북지원설, 국정원 도청설, 공적자금 비리만큼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국민 생활과 직결된 것은 없다. 4000억원 지원설은 향후 대북 관계 및 정부-기업 관계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국정원 도청설은 국민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밝혀져야 한다. 공적자금 비리는 건전한 국민경제를 확립하기 위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요컨대 이 세 가지는 한 개인이나 기업 차원의 비리가 아니라 국가 전체와 관련된, 문자 그대로 ‘국민적’ 의혹인 것이다.

◆ 국정조사-특검제 받아들여야

이를 덮어두고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것은 어쩐지 찜찜하다. 다행히 노 당선자는 엄정한 수사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나 의지가 있었다면 감사원이나 검찰이 벌써 이 사건들을 밝혔을 것이다. 이 점에서 검찰의 수사의지만 강조하는 것은 미덥지 못하다. 이 기회에 야당이 주장하는 국정조사와 특검제를 받아들여 기왕에 조성된 대화와 타협 분위기를 한층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 털 것은 털고 가는 게 노 당선자가 후보 시절 말한 ‘선택적 계승’에도 부합하지 않겠는가.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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