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경석/간섭 안받는 국회 만들라

  • 입력 2003년 1월 13일 18시 06분


코멘트
개혁 대통령을 자임하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앞에는 수많은 개혁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그 가운데서도 대통령과 국회, 정당간의 올바른 관계정립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핵심과제다. 그 논거는 간단명료하다.

우리 정치의 숱한 병폐의 근원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일컬어진 대통령들의, 삼권 위에 군림하는 권력 행사에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들이 여당을 자기당(自己黨)화하고 그러한 여당을 통해 국회를 장악함으로써 가능했다. 바꿔 말하면 정당(여당)이 대통령의 손에서 풀려나 독자성을 갖고 국회가 자율성을 확보해 3자간 관계가 바람직하게 정착되면 숱한 병폐가 바로잡히고 정치는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과업은 대통령이 주도해야 하며 그 책무는 막중하다. 노 당선자의 정치개혁의 성공 여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공 대통령’이 되느냐의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私黨化-인위적 與大化 말아야▼

그런 견지에서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속 정당(여당)을 자기정당화, 즉 대통령의 뜻에 순종하는 맞춤정당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마련된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이제 대통령은 당 총재를 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직 임명과 국회의원 공천 등에도 간여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노 당선자도 누차 이 룰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원칙이 어떻게 지켜질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의 대통령들이 거의 모두 자기정당을 만들었고, 지금 민주당에서도 노 당선자의 뜻에 맞는 맞춤정당으로의 새 단장 작업이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정치문화에 비추어 여당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이 앞으로도 막강하리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당선자는 여당을 민주정당으로 발전하도록 적극 뒷받침하고, 자신이 퇴임한 뒤에도 장수정당으로 발전하도록 가꾸어야 한다. 지난날의 여당들은 집권자와 정치수명을 함께하는 ‘한 텀(term)정당’으로 간판을 내렸다. 심지어는 집권자가 임기 중에 탈당함으로써 정당정치의 룰을 깨는 ‘무책임 정당, 무책임 정치’를 연출한 예도 있었다.

둘째, 타당 의원 빼내기와 야당 흔들기 등 인위적 방법으로 다수당을 만드는, 즉 무리수로 국회의석 판도를 여대화(與大化)하는 전철을 밟지 말기를 바란다. 이는 대선에서 나타난 ‘대선 민의’와 똑같이 존중돼야 할 ‘총선 민의’를 왜곡 모독하는 행위다. 작위적인 여대판도 만들기나 정계개편이 야당파괴라는 비난과 사생결단식 쟁투를 초래해 정국을 수렁에 빠뜨리고 정치를 병들게 한 과거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사리당략을 앞세우는 법과 제도의 변경도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당선자가 제시한 국회의원 선거구제의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 촉구, 2006년 개헌 마무리 발언 등은 정계개편 시도와 연관될 수도 있어 신중한 접근을 요하는 사안이다.

셋째, 국회의 자율성을 높이고 삼권분립체제가 건전하게 정착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정치가 현재 당면한 가장 절실한 과제는 국회의 자율성 확보다. 이를 위해선 대통령의 권력 절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통솔과 명령이 아닌 설득과 조정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국회를 하위기관시하는 권위주의적 타성을 버리고 국정운영의 대등한 파트너로 격상시켜야 한다.

▼'대등한 파트너' 위상 인정을▼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국회판도에서 대통령의 국정수행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대통령들이 삼권분립 원칙에 충실하면서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해 온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미국은 건국 이후 여소야대와 여대야소를 무수히 겪었다. 특히 1953년 이후엔 여소 기간이 여대 기간의 두 배에 이르지만 조약비준 등 중요 안건 처리에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는 야당과의 초당적 협조를 위한 노력이 크게 기여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굴레를 떨쳐버리고 참다운 정치개혁의 ‘성공 대통령’이 되는 길은 대통령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박경석 대통령포럼 공동대표·전 국회의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