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기욱/美여론 제대로 파악해야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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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 문제가 연일 미국 언론의 주요 뉴스로 등장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나 미 언론이 그만큼 북한핵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한국 내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한미간에는 상당한 시각차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첫째, 부시 정부 및 현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보수층에서는 북한의 계속되는 ‘벼랑 끝 외교’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를 어기고 비밀리에 핵 프로그램을 지속한 북한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력한 봉쇄정책을 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견해이다.

▼美, 盧당선자에 당황하기도▼

둘째, 한국 정부가 반미운동에 적극 대처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미와 북한 문제를 분명하게 분리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또 북한이 남한의 이런 국내 상황을 이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은 북한 정부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셋째,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과거 빌 클린턴 정부의 포용정책은 실패했다고 본다. 북한은 결국 변한 것이 없으며 한국인의 북한 위협 불감증만 키웠을 뿐 핵 문제를 포함해 해결한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넷째, 부시 정부는 자주적인 한미관계를 천명한 노무현 정부의 탄생을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다. 북한핵 문제에 관한 한 김대중 정부와의 효과적 공조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 노 당선자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미국으로선 사실 다소 당황하는 표정이다.

이처럼 부시 정부의 입장은 김대중 정부의 유화정책이나 ‘햇볕정책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노 당선자의 발언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부시 정부로서도 반미와 북한핵이 얽혀 있는 현 상황을 방치할 수만은 없으며 한미 공조가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한국 정부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보수층의 견해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빠른 시일 안에 팀을 구성해 미국 내 한반도 관련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이들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이를 정책수립의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반면 공식적인 특사 파견이나 특히 노 당선자의 미국 방문은 서두를 필요가 없을 듯하다. 철저한 준비 없는 방미는 자칫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 서둘러 미국을 방문했다가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갔던 김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둘째, 반미 문제와 대북 문제는 분리해야 하며 이 문제에 관해 노 당선자가 분명한 견해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대미 관계에서 자주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미군 철수를 요구하거나 대북 문제에 있어서 한미공조의 틀을 깨자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줄 필요가 있다.

셋째,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 노 당선자의 ‘북-미 갈등 중재’ 발언, 즉 북한과 미국간 분쟁이 있을 경우 중립적 위치에서 중재하겠다는 식의 발언은 그 진위가 어디에 있든 간에 미국 내 보수층의 불만을 자아낸 발언이었다. 반미 의식이 심화되고 한미 관계가 악화되면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여론이 미국 내에서 거세질 수 있다.

▼사려깊은 對美정책 절실▼

마지막으로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 가능한 한 노 당선자는 말을 아끼며 유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현 대북 유화정책의 기본틀을 유지하겠다면 이런 역할 분담은 더더욱 필요할 것이다.

미국의 봉쇄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하지만 미국이 한반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무엇보다 미 정부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 당선자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사려 깊은 정책수립이 대단히 절실한 시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기욱 美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소장대행·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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