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권순활/'낙관의 오류' 또 범할건가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8시 08분


경제전망은 어렵다. 날고 긴다는 국내외 경제연구기관이 내놓는 예측도 어긋나기 일쑤다. 오죽하면 “전망은 틀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까.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진 1997년을 생각해보자. 기아와 한보의 부도, 동남아 통화위기 후에도 사태가 그렇게까지 나빠질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더 냉정히 말하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꿰뚫어본 사람도 드물었다.

경제 선진국인 일본도 같은 해 ‘낙관의 오류’를 범했다. 일본 정부는 97년 7월 “거품경제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 민간주도 자율회복이 본격화됐다”고 자신 있게 선언했다.

그러나 불과 넉 달 뒤인 11월 야마이치증권 산요증권 홋카이도척식은행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주가와 엔화가치는 폭락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이 그해 4월 강행한 소비세율 인상의 후유증으로 내수도 얼어붙었다. 일본의 90년대를 상징하는 ‘잃어버린 10년(失われた 10年)’은 그 절정에 달했다.

경제에서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불안을 과장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치밀한 준비가 없는 어설픈 낙관론이 미치는 해악은 훨씬 치명적이다. 경제정책에서 ‘보수적 전망’을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어디에 서 있을까. 최근 나온 몇 가지 분석과 지표는 더 이상 ‘장밋빛 환상’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불안의 신호등은 이미 켜졌다. 경제위기가 꼭 외환위기만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명심하자.

LG경제연구원은 9월 말의 ‘외환위기 경보지수’가 96년 중반과 비슷하다며 위기 재발 가능성을 경고했다. 단기외채 비중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나친 개방으로 외국인이 쥐락펴락하는 국내 증시는 언제라도 돈이 빠져나갈 위험이 숨겨져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4·4분기 소비자태도지수는 47.3으로 급락해 1년 만에 기준치인 50 아래로 떨어졌다. 영국과 미국계 투자은행인 HSBC와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4.1%와 4.5%로 낮췄다. 고(高)학력 실업문제도 심각하다.

정치사회적 환경도 97년보다 그리 낫지 않다. 대선(大選)정국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경제는 뒷전이다. 정치권은 정파를 막론하고 승리에만 정신이 쏠려 있고 노사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제부처를 살펴봐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것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냉철한 현실 분석보다 안이한 기대를 더 담은 방심과 낙관이 대선 전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다시 경제위기를 불러올 틈은 없는지를….

정치인들이 선거에 목을 맨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기업인과 노동계, 경제관료와 지식인은 심상찮은 경제흐름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결정적 과오는 한 번으로 족하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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