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별성마마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7시 23분


지난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중앙정보국(CIA)이 북한 이라크 러시아 프랑스 등 4개 나라가 천연두균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아직도 북한이 천연두균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만약 갖고 있다면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다.

천연두는 인류가 ‘정복’한 유일한 전염병이다. 1980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에서 천연두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3년 전인 77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가 발견된 뒤 환자가 보고되지 않았던 것이다.

의학자들은 “공중보건학과 세균학, 면역학의 승리이며 이를 계기로 다른 질병도 하나씩 정복해 나갈 것”이라고 흥분했다.

천연두의 정복은 1789년 영국 시골의 개업의사인 에드워드 제너로부터 시작했다.

제너는 소젖을 짜는 여성들이 유난히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고 예방 백신을 만들었다. 백신은 라틴어로 암소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온 말이다.

천연두는 이전까지 인류의 최대 적이었고 역사의 주역들도 많이 희생됐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슬람의 칼리프 아바스 알 사바, 영국의 여왕 메리 2세, 러시아 황제 표트르 2세, 프랑스의 황제 루이 15세 등은 모두 이 병에 걸렸다.

무엇보다 1518년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침공했을 때 아스텍과 잉카제국의 군대는 적군인 스페인의 군대가 아니라 처음 접하는 병인 천연두 때문에 초토화됐다.

국내에서도 30대 이상의 성인에게는 천연두가 아주 친숙하다.

예로부터 이 병은 별성(別星)마마라는 역신(疫神)이 집집마다 옮기며, 호랑이나 오랑캐보다 더 무서운 병이라고 해서 마마, 손님으로 불렀다. 주위에는 마마 자국으로 얼굴이 얽은 ‘곰보’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불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결핵을 예방하는 BCG 백신과 함께 이 주사는 굵직한 흉터를 남겼으며 지금 피부과와 성형외과에서는 이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이 성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60년 세 명이 이 병에 걸린 것을 끝으로 환자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환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무서운 병이다. 지구는 천연두의 처녀지(處女地)가 됐다. 그래서 천연두균이 나돌면 스페인 침략기의 아메리카 격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인류는 아직 질병 정복의 걸음마 단계에 있다. 감기, 독감, 에이즈 등 인류가 타깃으로 삼아야 할 ‘적’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미 정복한 질병을 되살리는 ‘마성(魔性)’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질병 정복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한 민족의 나라인 북한이 마성의 국가가 아니기를 간절히 빈다.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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