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명동성당 시위대 전유물 아니다'

  • 입력 2002년 11월 6일 17시 57분


시위대들이 농성 중인 명동성당에 경찰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은 명동성당이 종교와 신앙활동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기능에 부합되는 장소로 되돌려져야 한다는 가톨릭계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당이 종교활동의 장소라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말이다. 그러나 국내 대표적인 성당인 명동성당에서 이런 상식 중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답답하고 낭패스럽게 만든다. 오죽하면 은퇴한 지 4년이 넘는 추기경이 침묵을 깨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언급하고 나섰을까.

김 추기경은 최근 인터뷰에서 “명동성당이 시위대로 인해 예배와 미사는 물론 교무처 일도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이라고 밝혔다. 신도와 성직자들이 자기 집에 살면서도 숨어살 듯 지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신도’와 ‘시위대’라는 주객(主客)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어도 한참 바뀐 느낌이다. 김 추기경은 또 시위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지를 사유물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명동성당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상징적 장소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졌고 시위대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울 장소는 명동성당 이외에도 많이 있다. 혹시 명동성당측이 시위대가 성당 구내로 들어오는 것을 용인했다면 상관없겠지만 성당측은 오히려 여러 차례에 걸쳐 시위대에 나가줄 것을 요청했다.

심지어 명동성당 구내에 있는 계성초등학교는 잦은 시위 때문에 교육 환경이 악화돼 학교를 이전할 계획이라는 소식까지 들린다. 철모르는 어린 학생들까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시위의 피해를 보고 있었다니 가슴아픈 일이다.

성당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피난처의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당의 일차적인 존재이유는 종교활동에 있으며 피난처 역할도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시위대들은 그들의 외침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김 추기경의 고언(苦言)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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