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감위원장 때문에 못 밝히나

  • 입력 2002년 9월 29일 18시 15분


남북정상회담의 뒷거래 여부는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진실은 하나일 것이고 이는 힘들이지 않고도 밝혀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0만원 단위의 돈 흐름도 밝혀지는 세상인 만큼 4억달러(4900억원)나 되는 뭉칫돈의 행방이라면 누구 말대로 반나절도 안 돼 확인이 될 것이다.

기술적인 면만이 아니라 정책적인 면에서도 정부가 진상규명을 주저하거나 회피할 이유가 없다. 대북 밀거래 의혹은 ‘햇볕정책’ 전반의 정당성이 걸린 민감한 문제라는 점에서 오히려 정부가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한나라당이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미 국가적 이슈가 된 데다 대출 경위 등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으므로 진상 규명의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본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이 ‘막말’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격한 반응만 보일 게 아니다. 과거 여러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그런 반응을 보였다가 뒤집힌 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국민은 믿지 않는다. 정말 떳떳하다면 즉각 조사 착수를 지시해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든 검찰 수사든 아무것도 꺼릴 이유가 없다.

당국이 이미 진상을 파악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다만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는 청와대나 정부가 강력하게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진상 공개에 소극적일 까닭이 없어서다. 정부가 머뭇거리면 국회가 나서는 게 순서다. 민주당도 국정조사를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먼저 정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게 옳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조사 책임과 권한을 가진 금융감독위원회의 이근영(李瑾榮) 위원장이 선택해야 할 일이 있다.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억달러를 대출할 당시 산은총재가 바로 이 위원장이었던 만큼 당사자로서 이 의혹의 조사를 객관적으로 지휘·감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정당했다면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 위원장은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도록 스스로 처신을 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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